한·미FTA 합의내용 당국자끼리도 딴말…“졸속타결 후유증 노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후에도 정부 관련자들이 협상 결과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하거나 해석이 상충되는 등 이견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이 정한 시한에 얽매여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협상을 밀어붙인 데 따른 후유증이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비상사태시 외국인 투자자들의 송금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금융 단기 세이프가드’와 관련해 “구체적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실무 협의를 통해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3면
하지만 실무 협상을 진행한 신제윤 금융분과장의 말은 달랐다. 신분과장은 9일 “1년 이상 송금 제한시 미국 정부와 협의, 미국인 재산 몰수 및 이중 통화 환율 금지, 미국 투자자와 재미교포 및 다른 나라 투자자 간 차별 금지 등 부대조건에 이르기까지 합의가 이미 끝났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합리적 수준에서, 합리적 기간 안에 개방하겠다’고 약속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과 관련해서도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박홍수 농림부 장관의 발언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권부총리는 최근 “그동안 많은 자료가 축적됐고 논의가 충분히 진행됐기 때문에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박장관은 지난 4일 국회 농해수위에 참석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결론이 나온 뒤 과학적 절차를 밟아 처리하겠다”며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 표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와 관련해서도 우리 측 협상단 김종훈 수석대표는 “비차별적이고 정당한 정부 정책이 재산을 몰수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인 반면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투자자로부터의 제소 우려로 인해 우리 정부의 규제정책이 위축되거나 중재심판 패소시 우리 정부가 배상책임을 질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가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검역 완화를 조건으로 섬유, 농업 분과 협상에서 더 많은 양보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관련 부처의 입장은 다르다. 해당 부서인 산자부 등이 “검역 완화 등은 없는 것으로 미국과 합의를 끝냈다”고 밝히고 있으나 고위급 차원에서 검역 완화를 고려했는지, 섬유 등 협상 매듭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정부가 핵심쟁점에서조차 세부사항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못 내놓으면서 아직 양국간 ‘주고 받기’가 덜 끝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법률 검토, 자구 수정만 남았다는 정부 발표대로라면 통합협정문을 4월 중에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주요 쟁점에 대한 추가 밀실협의는 없는지 밝힐 것’을 촉구했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