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 시대 개막…뒷감당 어떻게 하려나”
[기고] 노인장기요양법, 문제 해결부터 해야
2007-04-11 오전 9:35:08
지난 2일 기초노령연금법과 함께 노인장기요양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연금법 개혁과 연동된 문제인 ‘기초노령연금법’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도입 과정에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하지만 국민연금 개혁 문제에 가려 조용히 통과된 ‘노인장기요양법’은 별 논란 없이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지난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노인요양보험제도’ 도입을 언급한 이래 6년 여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을 정작 제도 도입을 요구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현행 법안대로 제도가 시행된다면, 정부와 여당의 주장과 달리 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도입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가 노인장기요양법의 문제를 짚어보는 글을 보내와 소개한다. <편집자>
부실한 내용과 준비 때문에 시민사회의 반대를 받았던 노인장기요양법이 4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2008년 7월부터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장기요양 서비스가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현행 노인장기요양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장기요양서비스, 공공의 역할은 뭔가
우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만 보자. 노인장기요양법은 자격을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한정함으로써 장기요양서비스가 필요한 수많은 장애인을 배제했다. 또 보장성 수준도 본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너무 커서 장기요양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수급권자를 보호하기 어렵게 제도가 설계됐다.
장기요양에 소요되는 비용 조달 방법에만 신경을 쓴 채, 정작 중요한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급 문제에 침묵하는 것도 큰 문제다. 과거 정부가 전 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할 때 비용 조달 방법에만 신경을 쓰고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민간에 전적으로 맡겨버려 결국 의료비 상승과 지역ㆍ계층 간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방치한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인장기요양법에서도 형식적이나마 서비스 공급기관인 장기요양기관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수급권자의 필요 정도에 따라 간호, 간병, 재활 등의 장기요양 서비스가 제대로 공급될 수 있도록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은 노인장기요양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일단 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공공의 역할은 사라지고 나머지는 본인의 몫이다.
이렇게 되면 장기요양 서비스는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민간 부문 중심으로 공급이 이뤄질 게 뻔하다. 대부분의 장기요양기관을 비영리법인,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 역할에 대한 강조가 빠진 노인장기요양법은 민간 부문 중심의 공급을 전면화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지역별, 종별로 장기요양 서비스의 필요에 따라 인력, 시설이 적절하게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수익률이 높은 부문에 인력, 시설이 집중적으로 배치될 게 확실하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법은 비공식 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간병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파견 노동을 구조화할 가능성도 크다.
제도 시행 전에 문제부터 해결해야
현행 노인장기요양법으로는 양질의 장기요양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형평성 있게 제공해야 할 기본 목적을 전혀 달성할 수 없다. 오히려 도시 중심의 서비스 공급, 계층 간 서비스 이용의 양극화, 비용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전 국민 의료보험을 반면교사 삼아서 재원 조달뿐 아니라 공급에 대한 공적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현행 노인장기요양법의 개정 작업을 신속히 전개해 장기요양센터, 장기요양지소 등과 같이 공공 장기요양 서비스기관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법과 함께 의료법, 지역보건법, 사회복지사업법 등 관련 법규를 개정해 관련 시설 및 인력의 법률적 근거를 명확히 해나가야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에 위탁한 장기요양기관을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거나 공공적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을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한다. 앞으로 필요한 장기요양기관과 그 인력을 정확히 추정해 예산 계획을 포함한 총체적인 정부 실행 계획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장기요양 서비스에 대한 책임이 일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규모가 작고, 지방자치단체마다 불균등한 현실에서 중앙 정부의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과 분배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장기요양 서비스의 일자리 확충에 나서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법이 통과되었지만 장기요양제도의 구축은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다. 충분하게 논의되지 못한 채 도입된 제도는 온갖 문제를 야기할 게 뻔하다. 제도가 시행되기에 앞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비상한 노력이 요구된다. 또다시 이런 요구를 외면한 후에 벌어질 사태는 고스란히 정부가 해결할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임준/가천의대 교수ㆍ예방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