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뜻대로 된 항목, 118개 중 단 7개
미국 입맛대로 끝난 ‘균형의 한미FTA’
24일 시민사회 한미FTA협상 분석 발표… 일방적 협상 논란 거세질듯
김종철(jcstar21) 기자
지난 2일 타결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 결과, 118개 세부항목 가운데 거의 대부분인 94개 항목에서 미국쪽 요구안이 그대로 관철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쪽 의견이 반영된 경우는 농업과 자동차 등 일부 분과에서 7개 항목에 불과했다. 또 한국과 미국쪽 의견이 절충을 이룬 항목은 12개정도였다. 전문직 비자 쿼터 등 아직 확정되지 않은 항목은 5개였다.
이같은 결과는 참여연대를 비롯해 3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미FTA의정감시단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단 소속 전문가 등이 정부가 내놓은 협상결과 등을 분석, 조사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24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가 내놓은 한미FTA 협상 결과표를 보면, 모두 21개분과(2개 작업반 포함)에 118개 주요 세부 쟁점에 대해서 한국과 미국의 요구사항이 자세히 분석돼 있다.
협상 결과에 대한 총괄분석을 맡은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노무현대통령이 협상이 끝나면 정보를 공개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밤새워 토론하겠다고 했다”면서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라도 이번 주부터라도 끝장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 주장 반영] 자동차·농업·의약품 일부, 그러나 ‘조건부’ 형식
이에 따르면, 한국쪽 의견이 반영된 경우는 7개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정부에서 성과라고 내세웠던 자동차와 농업, 의약품 일부 항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한국쪽 안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조건부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상품 분과에서는 조정관세 적용 부분을 현행 한국쪽 관세제도를 따르기로 했다. 미국은 조정관세 배제를 요구했었다.
자동차 분과에서는 미국시장에서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 화물트럭 등에 대한 한국쪽의 ‘관세 즉시 철폐’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대신 한국도 ‘자동차시장 개방과 특별소비세 개편, 특별 신속구제절차’라는 미국쪽 요구를 받아들여만 했다.
또 한국은 농산물의 특별긴급관세 도입 요구를 관철했지만, 대부분 품목에서 이같은 특별 관세 도입 요건이 까다롭게 돼 있다는 지적이다.
의약품 분과에서도 미국의 신약 최저가 보장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총칙에 혁신적 신약(또는 특허받은 의약품)의 접근성 원칙을 수용하기로 해 약값 인상 여지는 여전하다는 의견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국 쪽이 신약 최저가 보장을 하지 않겠다고 협정문에 명문화하지 않았다”면서 “총칙에 혁신적 의약품의 가치를 인정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별도로 구성될 위원회 등에서 어떻게 의약품 값이 매겨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밖에 투자 부분에서 금융위기 등의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외화송금 등을 규제할 수 있는 임시 세이프가드 발동에 대해선 일단 한국 쪽 요구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한미 양국간 합의가 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이외 지적재산권의 특허권에서 ‘특허강제실시 발동요건 제한’을 요구한 미국 쪽 요구는 철회됐고, ‘협정문의 국문본 정본 인정’도 한국 쪽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한미 주장 절충] 농업 ‘예외없는 관세 즉시 철폐’에서 ‘장기 개방’으로
한국과 미국쪽 요구가 절충을 이룬 항목은 11개 정도였다. 주로 논란이 됐던 농업 분야와 섬유·통신 등의 분과였다.
농업 분과에서 미국은 ‘예외없는 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했었고, 한국에선 공산품과 달리 민감성이 큰 농산품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개방 일정을 제시했었다.
전문직분야 상호 인정이나 통신시장 개방, 학교급식과 중소기업 보호 등에 대해서도 한미간 입장이 반영됐다.
[미국 주장 반영] 쇠고기 수입 개방… 섬유 밀어붙였으나 미국 방어에 막혀
대신 뼛조각 쇠고기 수입문제로 논란이 됐던 위생검역 분과는 노무현 대통령의 수입 재개 약속에 따라 ‘쇠고기 수입 개방’으로 일단락됐다.
상대적으로 한국이 강하게 몰아세웠던 섬유 분과에선 미국쪽 방어가 거셌다. 5년이내 전품목 관세 철폐를 주장했던 한국은 결국 미국 섬유시장의 61%(수입액 기준)만 즉시 개방으로 만족해야 했다.
국내 기업들의 관심사였던 무역구제 분과도 미국쪽의 완강한 거부로 위원회 설치로 끝이 났다. 정부는 미국이 반덤핑 제소 등 무역보복에 앞서 한미간 무역구제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하기로 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외 지적재산권과 서비스, 투자 분과 등 신통상이슈에 대해선 대부분 미국쪽 요구안이 그대로 반영됐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비롯해 금융서비스, 특허 및 저작권, 자료독점권 등이 포함됐다.
“미국 입맛대로 끝난 협상이 이익의 균형인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협상 정보를 객관적으로 공개하지않고, 협상 성과를 부풀려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이번 자료는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자료를 근거로 양국 협상 결과를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라며 “거의 대부분의 분과와 항목에서 미국쪽 요구대로 협상안이 타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는 이익의 균형을 이뤘다는 정부의 발표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홍보만 할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그룹과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토론장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