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보건의료계 ‘의약품 유통 일원화제’논란

도매協 “폐지땐 병원·제약사 담합 심화”

보건의료계 ‘의약품 유통 일원화제’ 논란

김순환기자 soon@munhwa.com

보건 의료계가 의료법 개정안 논란에 이어 의약품 유통일원화제도 폐지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병원과 제약업계의 의약품 직거래에 따른 부조리를 막기 위해 지난 1993년 도입된 의약품 유통일원화제도를 정부가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한국의약품도매협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의약품도매협회는 정부의 폐지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18일부터 정부과천청사 정문에서 회장단을 비롯한 임원단이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고 23일 황치엽 회장이 급기야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유통일원화제 폐지 논란 = 의약품 유통 시장은 2005년 현재 제약사와 의료기관의 직거래 비중이 46%가량에 이르고 있다. 유럽 등 의약분야 선진국들은 의약품의 도매 유통을 대부분 도매업체에 맡기고 있다.

도매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덴마크(100%)의 경우 모든 의약품의 유통은 제약사와 의료기관의 직거래가 아닌 도매업체를 거쳐 유통시키고 있다. 도매업체 유통비율은 독일 93%, 일본 92%, 영국 91%, 프랑스 85%이며 미국도 79%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3년 경찰당국의 병원과 제약사간의 금품수수에 대한 수사 발표 이후 유통일원화제도를 도입했다. 의약품 유통일원화제도를 유통 선진화와 함께 거래 투명화의 대안으로 삼은 것. 의약품 유통일원화제도는 제약쪽에서 생산 및 연구를 맡고, 도매쪽은 유통에 근간을 두자는 의미를 깔고 있다. 제조업→도매업→소매→환자로 이어지는 경제순환으로 도매업자를 통해서만 의약품이 유통되도록 한다는 것.

그러나 지난해 제약사들이 시장경제 논리를 내세우며, 소송 등을 제기했고, 정부가 지난 12일 ‘약사법 관련 시설 기준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를 통해 이 제도의 3년후 폐지쪽으로 입장을 변경했다. 이에 앞서 1993년 정부는 의약품의 경우 일반 공산품이나 농산물처럼 일반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전문인에 의해 선택되는 품목으로 제약사가 직접 나설 경우 과도한 경쟁 등이 우려된다며 유통일원화제를 도입했다.

도매업계는 유통일원화가 폐지되면 현재 공동물류에 의한 의약품 선진화 유통개혁을 추진중인 1600여개의 국내 의약품 종합 도매유통업체들중 상당수가 부도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도매유통업계에 미치는 손실 규모는 종합병원 전체시장 2조5000억원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조리 늘어날 것” = 유통일원화제가 폐지될 경우 제약회사간 납품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의약품 도매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약품도매협회는 각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5~15%의 추가 리베이트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협회 남평오 이사는 “유통일원화가 시장에 정착하면서 리베이트 비용 등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며 “유통일원화제가 폐지되면 제약사와 병원간 담합이 심해져 지금보다 부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제약사들이 신약개발도 소홀히 해 향후 한국 제약산업 발전에도 역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카피약)의 생산 판매에 치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곧 카피약 영업 치중으로 이어져 제약사의 유통비 비중 증가를 가져오고, 결국 국민들은 비싼 약을 사먹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 산업인 제약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제약사들이 판매위주 영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유통일원화제가 폐지되면 제약사들은 병원,약국 등과 직거래를 하기 위해 영업 조직과 사무실, 물류시설, 운영 인력 등을 확보해야 하는 등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도매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특히 크고 작은 개별 요양기관의 약품 주문에 일일이 응해야 하고, 타 제약사와 치열한 경쟁에 따른 운송비 중복과 영업 경비 등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도매 유통업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제약사들은 유통일원화제 폐지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제품 생산자인 제약사들에 대해 판매 제한은 시장경제에 반하는다는 논리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유통일원화제는 그동안 제약사들이 일관되게 폐지를 주장해 온 사안”이라며 “복지부의 입법예고중인 개정안에 대해서도 별도 의견을 내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순환기자 soon@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