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시장 열어라” 美 쇠고기 만찬 준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확 달라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이틀간의 정상외교 시험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두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 회동을 통해 우정을 다지며 양국 공조를 재확인하는 장면을 연출할 것이 예상된다.
▽달라진 워싱턴=전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하던 당시에는 두 나라가 이상적인 정상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인 고이즈미 전 총리가 지난해 6월 테네시 주의 엘비스 생가를 찾아갔을 때 부시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함께 타고 날아가는 우의를 과시했다.
그러나 올해 2·13 베이징 합의를 전후로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승부를 건다’는 원칙을 정하면서 일본의 대북 강경 기조는 워싱턴 정책과 괴리를 드러냈다. 일본은 “북한이 납치 일본인 문제에 획기적인 진전을 약속하지 않으면 대북 에너지 제공에 돈을 댈 수 없다”며 버텼다. 데니스 와일더 백악관 동아시아 선임보좌관은 25일 외신기자 회견에서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내가 만나는 일본 관리에게선 미일 간 견해차를 느끼지 못했다”고 애써 설명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워싱턴에서 주목받고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이 ‘일본의 잘못’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한 것도 과거 수년간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워싱턴포스트에는 아베 총리의 방미에 맞춰 “위안부에 대한 진실(The truth about ‘COMFORT WOMEN’)”이라는 제목의 전면 광고가 실렸다.
그러나 두 정상은 이달 3일 통화에서 “일본의 자세는 1993년 사과에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백악관은 “아베 총리의 솔직함에 부시 대통령이 감사 표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역사 문제를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에 넣지 않는 데 동의했다.
한편 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미 하원 결의안 통과를 위해 노력해 온 워싱턴 동포 범대위 회원들은 아베 총리의 도착일인 26일 낮 백악관 부근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실제 피해자인 이영수 할머니 등 100여 명이 참가했다.
▽우정 만들기 노력=부시 대통령은 1980년대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을 경영했을 정도로 야구광이다. 따라서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마쓰자카 다이스케 선수의 이야기가 두 정상의 공통 화제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와일더 선임보좌관은 같은 날 백악관 회견에서 “마쓰자카는 지난 한 해 일본 최대의 대미 수출 품목”이라는 농담을 건넸다.
특히 취임 후 첫 워싱턴 방문길에 오른 아베 총리를 위해 백악관은 소규모 만찬(26일)과 캠프 데이비드 별장 동행(27일) 일정을 준비했다. 최상의 대우로 간주되는 텍사스 주 크로퍼드의 개인 목장 방문은 성사되지 않았다. 전임 고이즈미 총리 역시 부시 대통령과의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 등 크고 작은 행사에서의 만남을 포함한 9번째 회동에서 크로퍼드행이 성사됐다.
백악관은 브리핑을 통해 “요즘 중국과 인도가 뜨고 있지만 두 나라 경제력을 합쳐도 일본에 못 미친다”며 일본의 중요성을 한껏 높였다.
단, 미국이 일본에 쇠고기 수입의 전면 재개방을 요구하는 상황을 고려해 만찬에는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가 준비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도 수입 재개 압박을 넣고 있는 민주당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은 이날 서한을 통해 같은 요구를 내놓았다. 일본 총리실은 “아베 총리가 맛을 즐길 것”이란 말로 에둘러 확인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워싱턴 방문 때도 스테이크는 예외 없이 메뉴에 올랐다.
아베 총리도 부시 대통령을 고려한 다양한 선물을 준비했다. 아베 총리는 부시 대통령의 골칫거리인 이라크전쟁 부상 병사가 치료 중인 병원을 찾아가 위문할 예정이다. 독신인 전임자 때와는 달리 일본식 현대 여성으로 평가되는 아키에(昭惠) 여사와 로라 부시 여사의 내조 외교도 주목거리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