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법 개정, 의협 로비 수사 끝나고 하라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개정 의료법안이 어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입법예고를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한 것이니, 형식상 절차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검찰이 불법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대한의사협회를 수사하고 있고, 복지부 직원들도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터에 국무회의 의결을 서두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로비 의혹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국회에 법 개정안을 처리해 달라고 태연하게 넘기는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하나둘 밝혀지는 의사협회의 자금운용 실태는 점입가경이다. 한 해 200억원이 넘는 예산 가운데 상당액이 증빙 없이 집행됐고, 증빙이 딸린 것도 비정상적인 지출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의사협회 직원이 140여명인데 법인카드만 157개를 발급받았다는 점도 정상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장동익 회장이 회원들에게 밝힌 것 이상으로, 검은돈이 오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다른 의사단체인 의료개혁국민연대는 의협이 거래은행과 짜고 가짜 통장을 만들어 수십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검찰이 어느 선까지 불법 로비의 실체를 밝혀낼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사태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국민의 건강권보다는 의료단체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그동안 수많은 의료 관련 법령이 휘둘려 온 것이 검은돈과 돈에 눈이 먼 공직자들의 부패 때문이라는 심증이 사실로 확인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그 검은 고리를 찾아내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이 의료법 개정보다 훨씬 시급한 일이다.
복지부는 대통령 재가를 받는 대로 법 개정안을 국회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회가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법안을 검토한다면 우스운 일이다. 법 개정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조항도 없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난 뒤에 차분히 논의하는 것이 옳다.
정부안을 대신해 국회가 새로 의료법 개정안을 만드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정부안은 애초 초안에서 의사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여러 조항을 뺐다. 정부안에 담긴, 의료의 상업화를 부추기는 조항들을 두고서는 의료 소비자들의 반대가 거세다. 국회는 이런 비판을 수렴해 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기사등록 : 2007-05-08 오후 06:54:12 기사수정 : 2007-05-08 오후 06:5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