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AI 지역화 인정’ 협의 착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양국이 조류독감(AI) 지역화 인정 문제와 관련한 협의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조류독감 지역화 인정’이란 예를 들어 미국 텍사스주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하더라도 텍사스만 빼고 다른 주의 닭고기는 모두 수입하라는 것이다.
최재천 의원이 정부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지난 3월 양국간 기술협의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협상 막바지에 미국이 요구한 AI 지역화 개념을 적용하기로 하고 “위험평가 절차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2007년 4월에 설문서를 미 농업부 동식물검역청(APHIS)에 제시할 것”이라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작성했다.
현재 정부는 이 경우 모든 미국산 닭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다자 협의체인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위원회도 가금류 수출국인 미국·캐나다 등과 수입국의 이해가 엇갈려 아직 본격적인 협의절차에 착수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예비위험평가를 거쳐) 설문서까지 미국에 보냈다는 것은 AI 인정을 위한 8단계 중 벌써 2단계 작업에 착수했다는 뜻으로 양국이 협의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광우병안전연대와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WTO와 한·미 양국 정부는 조류독감의 원인이 철새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AI 지역화 인정은 날아다니는 철새의 주경계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육류검사 시스템의 동등성 인정 문제도 무역장벽 해결을 위해 국민건강을 내팽개친 대표적 사례로 드러났다.
광우병안전연대 등에 따르면 미국은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내 쇠고기 수출작업장 승인을 한국 정부가 개별 작업장별로 하지 말고 미국이 승인하면 무조건 안전하다고 인정할 것을 주장했다.
박국장은 “정부가 미국 요구에 완전히 굴복한 건 아니지만 미 무역대표부(USTR) 농업자문위원회가 보고서를 통해 ‘육류 시스템 동등성 문제를 한국 정부로부터 완전히 받아내라’는 취지로 미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며 “추가로 우리 정부가 수출 가능 미국 도축장 범위 확대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범국본은 “한·미 FTA는 미국의 농수축산 거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내의 검역체계를 붕괴시킬 것이며, 우리 국민의 건강을 해치고 식품안전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종훈 우리측 협상단 수석대표는 이날 KBS1 라디오에 출연해 미국과의 추가협상 과정에서 맞받아 내걸 요구 조건과 관련, 전문직 비자쿼터·의약품·지적재산권 등을 언급해 사실상 미국과의 ‘재협상’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권재현·전병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