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한국은 운도 없어…금연운동도 맘대로 못해”

  
  ”한국은 운도 없어…금연운동도 맘대로 못해”  
  [대담] 쉐이퍼 UC교수-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실장  

  2007-06-08 오전 9:29:40    

  
  한미 자유무역협상(FTA)이 타결된 지 2달이 지났다. 협상 타결 직후에는 ‘한미 FTA 협상을 너무나 잘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으로 한미 FTA에 찬성하는 여론이 확산됐지만, 협정문이 공개됨과 동시에 각종 독소조항들이 드러나면서 이런 분위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중 특히 의약품 분야의 협상 결과는, 미국 제약업계가 “우리에게 큰 기회”라고 할 만큼, 혹은 미국 시민단체가 “한국이 너무 운이 없다”고 할 만큼 한국 측 패착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아직까지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국 정부는 한미 FTA로 인해 함부로 금연 운동을 펼 수 없게 됐다. 또 미국 담배에 대한 관세도 조기에 철폐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 국민들은 과거에 비해 더 큰 흡연 위협에 노출되게 됐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대적인 금연 운동을 펼치겠다’던 정부는 ‘양담배 값이 싸지면 좋은 것 아니냐’는 모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이같은 사실을 최초로 지적한, 미 시민단체 ‘통상 및 보건 정책연구센터(CPATH, Center for Policy Analysis on Trade and Health)’의 공동대표인 엘렌 쉐이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임상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있었던 이 인터뷰는 그동안 한미 FTA 의약품 협상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분석해 온 전문가인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이뤄졌다. <편집자>
  
  우석균: 당신이 공동대표로 있는 ‘통상 및 보건 정책연구센터’에 대해 설명해 달라.
  
  엘런 쉐이퍼(이하 쉐이퍼): 우리는 통상 및 보건 관련 정책을 분석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비영리단체다. 통상 및 보건 관련 연구뿐 아니라, 우리는 공공보건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지지, 국제통상에서 보건·의료 문제를 쟁점으로 제기하는 운동 등을 주도해 왔다. 통상 정책과 보건 정책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 즉 이들을 건강하게 하고 이들 사이의 사회적 평등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조응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우리는 다자간, 양자간 통상협정의 세세한 부분들을 조사해 왔다. 그리고 이들 통상협정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노력해 왔다. 특히, 미국이 세계 통상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미국의 통상 및 보건 정책에 우리와 전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우석균: 그런 성격 때문에 한미 FTA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겠다. 일단, 한미 FTA의 전체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쉐이퍼: 우리는 한미 FTA 전에 호주와 FTA를 체결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은 바로 그 때서야 최초로 ‘자유무역이 우리의 능력, 가령 적정 가격의 의약품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강화하는 능력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한미 FTA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은 튼튼한 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선진국이 아닌가. 나는 한국이 한미 양국의 사람들을 위해 좋은 협상결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협정문을 보건대, 나는 한국에 실망했다. 공중보건과 의약품과 관련된 많은 해로운 조항들이 협정문에 들어갔다. 심지어 과거에 미국이 맺었던 FTA 보다 훨씬 더 악화된 부분도 있다.
  
  한국은 분명 더 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통상협정 협상이 진행될 때 국민 건강과 관련된 쟁점들은 낮은 우선순위를 갖게 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미 FTA는 보건, 수도 및 위생과 관련해 최악의 협상결과를 낸 협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FTA에서는 많은 위험신호들이 보인다.
  
  ’양담배 관세 없어진다’…무조건 좋은 것?
  
  우석균: 최근 한국 시민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나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관련 워크숍에 참석해, 지금 한국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의약품 문제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신 걸로 안다. 특히, 한미 FTA 협정문에 담긴 담배 관련 규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당신은 이 문제를 최초로 지적했고, 한국인들은 깜짝 놀랐다.
  
  쉐이퍼: 미국 사람들도 놀랬긴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이란 상품과 서비스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매매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 이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담배와 같은 특정 상품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이는 미국 내의 지배적인 시각이기도 한데, 사람들이 가능한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담배가 더욱 비싸지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담배 피는 걸 시작하지 않기를 바란다. 흡연자들이 흡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금연하기를 바란다.
  
  흡연이 계속되는 것은 니코틴 중독이라는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담배 회사들이 퍼붓는 광고와 마케팅 공세 때문이기도 하다. 담배 회사들은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 엘렌 쉐이퍼 캘리포니아대 교수. ⓒ프레시안  

  우리는 한미 FTA에서 담배가 협상 의제로 오른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과거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담배 관련 쟁점이 FTA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의회는 행정부로 하여금 담배가 FTA의 협상대상이 되지 않도록 다양한 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담배 관련 조항이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가다니, 한국은 정말 운이 없는 나라다. 미국의 담배 회사들은 1980년대 이래로 (한국) 정부의 담배 관련 규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으며, 최근에 와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1980년대부터 양담배 유입과 함께 흡연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한국은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NHP Act, National Health Promotion Act)을 도입해 19세 이하 청소년의 흡연 금지 및 담배 광고 규제 등을 시행했고, 2001년에는 양담배에 40%의 관세를 붙이기도 했다.
  
  한국은 담배 시장을 개방할 때 이 관세 때문에 양담배가 비싸져서 국내 흡연 인구의 증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현재 한국 성인 남성 중 3분의 2가 흡연을 하고 있지 않나. 이 중에는 심지어 보건 전문가들도 포함돼 있다.
  
  최근 한국의 흡연 인구는 금연 열풍에 힘입어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흡연으로 인한 국가적인 피해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미 FTA에서는 담배에 붙이는 관세 40%마저 몇 년 안에 폐지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미 FTA에서 자동차나 쇠고기, 또는 다른 큰 경제 문제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지만, 담배 관세가 없어진다는 것도 큰 문제다.
  
  우석균: 담배에 대한 관세 철폐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한국 정부는 ‘관세철폐는 항상 좋은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매우 중요한 지적을 했듯, 한미 FTA에서 관세 철폐 대상이 된 품목에는 상품(goods)뿐 아니라 유독물질(toxic)이나 해로운 물질(harmful goods)도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고려가 없다.
  
  당신은 한미 FTA로 인해 담배 광고, 담배 포장, 브랜드명 표기 등 담배와 관련된 정부 규제가 큰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한국의 담배 규제?…미국 담배 회사들의 ‘된서리’ 맞을 것
  
  쉐이퍼: 모든 관세는 나쁜 것이라는 논리처럼, 모든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논리가 FTA 협상에서 관철되고 있다. 정부 규제는 기업의 이윤활동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통상협정에서 이를 철폐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나는 한국의 담배 산업은 국내 산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외국 기업들만큼 광고를 많이 내지 않는다. 또 ‘흡연은 암을 유발한다’든지 ‘여러분은 흡연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와 같은 문구들을 담배 포장지에 새기기도 한다. 한미 FTA로 인해 이런 것들이 변할 것이다.
  
  물론 FTA 협정문에는 이런 문제점을 상쇄해주는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가령, 협정문에는 공중보건을 위한 정책을 쓸 수 있다는 표현이 들어간다. 하지만 어떤 규제든지 기업의 이윤 활동, 즉 무역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면 이는 공격대상이 된다. 게다가, 어떤 규제가 공중보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판단 여부는 ‘공중보건의 관점’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이뤄진다.
  
  우석균: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아래 캐나다 사례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다.
  
  쉐이퍼: 캐나다 정부는 담배 포장지에 말보로, 카멜 등 담배 회사의 브랜드명을 크게 새기는 것을 줄이려는 정책을 도입하려고 한 적이 있다. 캐나다 정부는 브랜드 로고의 크기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미국의 담배 기업들은 캐나다에 로비, 아니 정확히는 위협을 했다. 캐나다가 미국 기업을 차별했으니, 이 때문에 캐나다를 고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위협 효과는 충분했다.
  
  다른 요인들도 없진 않았지만, 이 위협의 ‘된서리 효과(chilling effect)’가 분명히 나타났다. 많은 캐나다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 심지어는 법무부까지 “우리는 이 문제에 대처할 수 없어. 수천, 수억 달러가 들 거야”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법안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돼 버렸다.
  
  우석균: 그래서인지, 최근의 담배 포장지를 보면 브랜드명이나 기업 이미지는 매우 크게 새겨진 반면 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구는 매구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쉐이퍼: 그렇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면 폼이 나고 터프가이처럼 보인다는 말보로 광고가 횡행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조 캐멀의 이미지가 새겨진 캐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담배 회사가 담배 포장지를 통해 선전하는 이미지를 사게 되는 것이다.
  
  경고문은 너무나 작고 브랜드명과 로고 이미지는 너무 크게 박히는 것, 몇몇 나라들은 이런 통상 규칙에 저항하려고 한다. 가령 담배 포장지에 담배로 인해 아프게 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한다. 그건 공공보건을 위한 좋은 정책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의 일부는, 의회 의원들과 함께 이런 일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의원들 중에는 우리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미국의 통상정책을 관장하는 미 하원 세입세출위의 한 의원도 “굳이 그런 걸 확신시키려고 들지 않아도 됩니다. 난 담배 규제의 지지자인 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역시 담배 규제와 관련해 한미 FTA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몰랐다.
  
  그는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편지를 써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무역대표부 대표는 “우리는 지금 한국 측이 제안한 것을 검토하는 중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하긴 힘들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매우 기분이 상했다. 미국의 이런 국내 정치에 전 세계의 공공보건 정책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 하원 세입세출위의 실세인 찰스 랭글 의원과 샌더 래빈 의원은 페루 및 파나마와의 FTA 재협상에서 신통상정책(New Trade Policy for America)을 반영할 것이라고 한다. 이중에는 공공보건 관련 사안들도 들어 있다. 아직까지는 담배 규제보다는 의약품에 대한 쟁점이 더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담배 규제 문제도 재협상 쟁점으로 꼽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게 앞으로 있을 한미 FTA 재협상에서 다뤄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우석균: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 정부도 TV에 한국의 유명한 개그맨(고 이주일 씨)의 모습을 내보내 금연 운동을 하려고 했다. “담배를 피우지 마세요. 폐암의 원인이 됩니다”라는 내용이 그 광고에 담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이와 동시에 ‘그래도 한미 FTA에는 반대하지 말라, 담배에 대한 관세철폐에 반대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엄청난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민간보험의 득세는 세계 어디서나 재앙”
  
  우석균: 다음으로는 보험시장의 개방에 대해 이야기 봤으면 좋겠다. 한미 양국 정부는 민간의료보험 등을 포함한 민간보험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1년 내 보험상품을 ‘포지티브 시스템(허용된 보험상품만 출시 가능)’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출시가 금지된 상품 외 모든 보험상품의 출시 가능)’로 바꾸겠다고 미국에 약속한 것이다.
  
  한미 FTA 협정문에서 한국의 법을 바꾸겠다고 하다니, 이런 약속은 명백히 한국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쉐이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프레시안  

  우석균: 한국 정부의 건강보험 예산은 30조 원이다. 그런데 민간보험 규모가 이미 10조 원에 육박한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적용 대상이 좁은 편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를 보조하기 위해 민간보험상품을 사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 제일 큰 보험사는 삼성생명보험이고, 네 번째로 큰 회사가 바로 우체국보험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정문에서 우체국의 보험 부문을 민영화하기로 약속했다. 우체국보험이 민영화되면, 업계 5위인 AIG가 4번째 자리를 꿰차게 된다. 이러저러한 상황이 한국의 보건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쉐이퍼: 민간보험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재앙이다. 이는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을 이미 휩쓸었고, 그 결과 미국 국민들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나쁜 건강보험 체계를 가지게 됐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민간보험은 어느 나라든 침투하기만 하면,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효과를 미친다. 그 나라의 공적 건강보험 체계를 침식해 들어가고 끝내는 파괴해 버린다. 유럽은 이미 1980년대에 민간보험의 폐해를 경험한 바 있다.
  
  우리는 건강보험을 위해서만큼은 ‘경쟁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건강보험을 경쟁 시장으로 내몰겠다는 게 한미 FTA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협정문의 다른 조항들 때문에 더욱더 많은 돈을 의약품과 의료기기 구입에 쓰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이 건강보험에 접근하기란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나마 건강보험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민간보험 시장으로 갈 것이다.
  
  그러면서 의료 시장의 양극화, 나아가 경제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다. 가진 자는 비싼 치료를 받고, 없는 자는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식으로. 중국이 이미 그 예를 보여주고 있다.
  
  우석균: 한국 정부는 한미 FTA가 공중보건, 특히 국민건강보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민간보험 부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쉐이퍼: 공공 부문에서 돈이 빠져나간다면, 그리고 이와 동시에 민간보험에 대한 규제가 풀린다면, 그 둘이 어떻게 연관이 안 될 수 있나. 당연히 한미 FTA는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친다.
  
  우석균: 한국의 민간 보험사들은 영업 영역을 넓히기를 원한다. 그들이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를 통해 한국을 고소하는 것이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쉐이퍼: 물론 그렇다. 정부는 ‘공중보건’은 예외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협정문의 서비스 장에는 정부가 공중보건에 대한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고 분명히 나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단서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책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 온 ISD 관련 소송들이 이를 잘 보여주지 않고 있는가?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사건이나 벡텔 사건이 그 완벽한 예다. 어떤 규제나 정책이 공중보건을 위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정책을 실행한 국가가 아니라 제3의 중재재판부다.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 이래 13년 간 총 20개의 공중보건 관련 소송이 있었는데, 그 중 18개의 소송에서 국가가 지고 투자자가 승리했다.
  
  우석균: 공중보건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자. 북미자유무역협정 아래서도 공중보건은 소송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그런데도 많은 문제가 노출됐다. 미국과 캐나다의 공공정책이 위협을 받았다.
  
  한미 FTA 협상 당시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미 FTA의 ISD 조항은 나프타의 ISD 조항보다 훨씬 더 나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우리는 사실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해 듣기로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 (미국 석유회사인) 쉐브론이 ISD 적용예외 대상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들은 ‘ISD 예외에 대한 예외’를 원했다고 한다. 바로 그 결과가 반영된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한미 FTA 협정문의 ISD 조항이다. 바로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등과 같은 ‘예외의 예외’가 들어간 것이다.
  
  쉐이퍼: 맞다. 한미 FTA의 ISD 조항은 기존의 어떤 ISD 조항보다도 더 엄격해져서 사실상 어떤 정책이 공중보건을 위한 정책이라는 이유로 소송에서 제외되는 것이 더 어렵게 됐다. 나 역시 한미 FTA 협정문의 ISD 조항을 보고 엄청나게 실망했다.
  
  우석균: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한사코 한미 FTA 협정문에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에 영향을 미칠 조항이 없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쉐이퍼: 한국은 제주 등 여러 자유경제구역에서 이미 의료시장을 완전히 개방했다. 그곳에서는 미국에서 자격증을 획득한 의사들이 자유로이 영업을 할 수 있다. 한국은 또 물이나 위생 관련 서비스 시장도 개방했다. 하지만 이런 개방은 한국 스스로 결정한 ‘자발적인 개방’이고 ‘자발적인 민영화’였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는 한국이 적어도 외국회사가 공중보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에서는 이런 결정권이 사라진다.
  
  보건 관련 정책은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소송 대상으로 노출된다. 한번 시장을 개방하면 절대로 이를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어떤 공중보건 관련 정책을 실행했다가 “이건 아니야. 해보니 별로야. 하지 말아야겠어”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외국인 회사들이 반대하면 그렇게 할 수 없게 된다.
  
  우석균: 한미 FTA의 또 다른 독소인 래칫(Rachet·역진 금지)에 대해 언급하셨다. 한미 FTA 협상에서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을 이끌었던 한국 공무원도 최근 제주 경제자유구역 등 4곳의 자유경제구역에 래칫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또 한국 정부는 최근 향후 1~2년 내에 2개의 경제자유구역을 더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들 지역에도 한미 FTA의 래칫이 적용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재앙’이 아닌가.
  
  쉐이퍼: 그렇다. 한미 FTA는 재앙이다.
  
  한미 FTA는 미국에서도 아직 논쟁적인 이슈
  
  우석균: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한국 정부는 한-EU FTA 협상을 시작됐다. 한국은 중국과 FTA를 맺을 가능성도 탐색하고 있다. 그야말로 FTA 물결이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EU와 FTA를 맺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는 한국 정부의 바램대로, 한국이 정말로 ‘FTA 허브’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이런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쉐이퍼: WTO(세계무역기구) 다자간 협정이나 FTA(자유무역협정)와 RTA(지역무역협정) 등 각종 통상협정은 미국의 통상정책이 관철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이런 흐름에 대응해 그동안 잘해 왔다고 생각한다. 축적된 지식의 수준도 높고 활발한 활동도 펼쳐 왔다.
  
  사실, 한미 FTA는 미국에서도 굉장히 논쟁적인 쟁점이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이처럼 비민주적인 방식의 통상협정에 반대하는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미 FTA의 비준을 적어도 (미국의) 다음 대선 때까지 늦춰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한 다양한 모멘텀들이 이미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더 나올 것이다.
  
  우석균: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미국 간의 연대가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쉐이퍼: 특히 공중보건 관련 한미 양국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강화되기를 바란다.  
    
  

  정리=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