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인질 추가 살해’ 시민반응

남은 사람이라도 무사히”…꿈적않는 미국 원망도
‘인질 추가 살해’ 시민반응

  이정훈 기자  이정애 기자  

  

»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텔레비전 상가에서 한 시민이 31일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들 가운데 심성민씨가 희생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탈레반 민간인을 비겁하게 이용” 분노
“미국 때문 파병국만 피해” 철군 목소리
아프가니스탄에서 배형규(42) 목사에 이어 심성민(29)씨까지 살해된 사실이 확인되자, 시민들은 자신의 가족을 잃은 것처럼 분노하면서 나머지 21명이 하루빨리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아울러 탈레반에 대한 분노만 아니라, 한국군 파병과 미국의 무책임한 태도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 제시도 늘고 있다.

■분노=두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시민들은 탈레반에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냈다. 회사원 이승철(31)씨는 “자신의 나라를 도우러 간 민간인을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은 반인륜적인 처사”라고 말했다. 또 대학생 김주원(22·고려대 법학3)씨는 “신념이 어떻든 사람을 납치해 함부로 죽인다는 건 무조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에도 ‘테러조직이 아닌 살인자집단-탈레반’(mocasa), ‘탈레반은 도적떼에 불과하다’(skilhwang) 등 분노의 글이 가득했다. 심지어 ‘탈레반에 보복해야 한다’(ekqhre)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 시민들은 심씨를 애도하며 남은 21명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공무원 김경용(45)씨는 “기독교나 봉사단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나머지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누리꾼들도 심씨의 사망 소식에 댓글을 달며 ‘근조’(▶◀) 표시를 붙여 애도했다.

■원인 진단=희생자가 늘어나면서 한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부 조옥희(55·서울 마포구)씨는 “1차적인 책임은 한국군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데 있다”며 “매번 미국 요청에 따라 군대를 보내야 하느냐”고 말했다. 회사원 박희수(28)씨도 “미국 눈치를 보느라 파병한 국가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참에 명분 없는 파병을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이날 저녁 7시30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철군을 주장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점령군으로 주둔하고 있는 만큼 이를 돕는 한국군 역시 공동 점령군이 될 수밖에 없다”며 피랍 사건의 근본 원인이 파병에 있음을 강조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철군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아이디 ‘써니샤인’은 “국제외교의 제1원칙은 국익이다. 지금 대한민국 백성이 잡혀 죽어가고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느냐”며 동의·다산부대의 조속한 철군을 요구했다. 또 아이디 ‘dark’도 “그동안 충실히 미국을 도왔고, 넘칠 만큼 했다. 정부가 열린 자세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철군 시한을 앞당길 것을 주장했다.

■ 반감=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미국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도 커졌다. 대학생 양혜진(23·중앙대 생물학과4)씨는 “자국민이 피랍된다면 미국이 이런 반응을 하겠느냐”며 “이런 것도 약소국의 설움”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병록씨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에서 무고한 인명 피해가 생기는데 짧은 논평만 내고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미국은 지켜만 보지 말고 당장 협상 테이블로 나와 문제를 해결해라’(yusminjin) 등 미국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은 “미국이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는데 국제법상 이는 엄연히 불법적인 침략행위”라며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폭력이 악순환되는 내전 상태에 빠져 봉사활동을 간 한국 젊은이들이 이 악순환 고리에 연루됐다”고 말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 침공 이후 괴뢰정부에 다름없다”며 “두 명이 살해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미국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개신교와 비슷한 남부침례교를 믿는 대통령을 둔 미국이 이번 사태에 소극적인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지금이라도 기독교 단체들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피랍자 석방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등을 열어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이정애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