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병원비·약값 없는데…” 가난 노리는 ‘결핵’, 해마다 3천여명 숨져

“병원비·약값 없는데…” 가난 노리는 ‘결핵’
입원 월 60만원 저소득층 “생계때문에 포기”
후진국형 병이라는데…해마다 3천여명 숨져

한겨레         김소연 기자
        
» 결핵 환자들이 20일 서울 한강로2가 대한결핵협회 서울지부 복십자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1 6년째 결핵을 앓고 있는 이한기(50·가명)씨는 1년 동안 치료를 중단했다가 지난 7월부터 다시 서울 은평구 역촌동 시립서북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중단했던 이유에 대해 이씨는 “보험이 적용돼도 입원치료를 하면 월 60만원 정도가 들고 통원치료를 해도 30만∼40만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긴 투병 생활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고 2년 전 부인과 이혼까지 했다. 이씨는 “형한테 더 이상 손을 벌리기도 염치가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치료를 중단했다”며 “몸무게가 10㎏이상 빠지는 등 병이 악화돼 다시 병원에 끌려왔다”고 말했다. ‘다제내성 결핵’을 앓는 이씨는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2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사는 김인식(53·가명)씨는 2002년 기침이 심해 병원에 갔다 결핵 진단을 받았다. 약만 꾸준히 먹고 음식을 잘 먹으면 완치될 수 있다는 말에 안심했다. 실제 석달 정도 약을 먹으니 몸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건설일용노동자로 일하던 김씨는 일거리를 찾아 대전의 공사장에 가야 했고, 치료는 중단됐다. 2004년 또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결핵에 내성이 생겨 오랜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일도 그만둬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된 상태였다. 김씨는 “당뇨와 고혈압 등 합병증까지 생겨 한 번에 서른 알 가까운 약을 먹고 있다”며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흔히 못먹고 못살던 시절의 ‘후진국형 병’이라고 알려져 있는 결핵. 약만 잘 먹고 요양만 잘하면 다 낫는 병이라고 여기지만, 저소득층에게는 여전히 ‘죽음의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생계에 쫓겨 꾸준한 치료와 충분한 영양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핵전문 병원인 복십자병원의 김은배 원장은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생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차상위 계층은 정부 지원이 미약해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한다”며 “초기 치료를 제대로 못하면 다제내성 결핵으로 이어져 상태가 더욱 악화된다”고 말했다.

        
        
실제 나백주 건양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지난 2001년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결핵 사망률이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6배나 높았다. 이렇게 해마다 결핵으로 숨지는 사람이 여전히 3천명 안팎에 이른다. 결핵 환자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한응수 사무관은 “이달부터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정부 지원을 확대했고, 초기 치료를 제대로 받는지 추적 관리하는 시스템을 시범 실시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2030년 결핵 완전 퇴치를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수 시립서북병원 진료부장은 “결핵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면 사회가 병드는 사회적 질병”이라며 “저소득층의 범위를 대폭 확대해 진료비를 전액 지원하면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상태가 심한 환자들은 정부에서 입원치료를 권장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제내성 결핵=결핵 초기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고 중단할 경우 자주 생긴다. 결핵치료제인 이소니아지드(INAH)와 리팜피신(REP)을 투여해도 결핵균이 죽지 않는 경우로, ‘처방 가능한 거의 모든 항결핵 약에 내성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치료 기간도 2년 이상 걸리고 약값도 비싸다.

글·사진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2007.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