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약 살 돈 없다” 입원환자 내몰기까지, 적자늪 지방의료원…위기의 공공의료

“약 살 돈 없다” 입원환자 내몰기까지
적자늪 빠진 지방의료원…위기의 공공의료

한겨레        
        

» 지난 20일 찾은 경기 파주시 경기도립의료원 파주병원 구관 3층의 ‘스테이션’ 위에 전화기 등이 먼지를 쓴 채 방치돼 있다. 2년 전 국비 42억원과 도비 등 174억원을 들여 병원 신축 등의 현대화사업을 위해 폐쇄됐으나, 그동안 방치돼 있다가 지난 21일 철거하기로 결정됐다. 파주/홍용덕 기자
        
참여정부가 200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산하 34개 지방의료원을 의료서비스가 처진 지역과 소외계층 주민을 위한 지역거점 병원으로 육성한다고 발표한 ‘장밋빛 청사진’은 사라졌다. 약값을 주지 못해 입원 환자에게 퇴원을 요구하는가 하면, 적자 경영을 해소한다며 병원 신·증축을 위한 국비 지원금을 반납하고, 인력감축에 이어 매각 논의 등의 ‘찬바람’이 불면서 공공의료기능의 축소 우려를 낳고 있다. 민간 병원들이 ‘2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시설을 개선해 환자 유치에 나선 반면, ‘3천달러 시대’에 머무른 지방의료원들은 시설 노후화와 환자수 감소, 경영적자라는 악순환으로 이제 존폐 문제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시설노후-환자감소-적자누적 악순환에 허덕
지자체, 경영성과만 중시 인원감소·매각추진도

■ 경영적자가 노조 탓? =지난 20일 돌아본 경기도립의료원 파주병원 구관은 불이 꺼져 음울했다. 신관을 뺀 구관 3개 층 곳곳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집기가 쌓여 있고 창고인 지하층은 병원 직원도 출입을 꺼릴 정도여서 병원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2005년 구관 신축 등 파주병원 현대화을 위해 지원된 42억원의 국비는 2년째 잠자고 있다. 파주시는 “도심 노른자위를 차지한 병원이 지역 발전에 장애가된다”며 병원을 외곽으로 내쫓고(?) 쇼핑몰 유치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지난 21일 아예 파주병원 신축 포기와 인원 감축 등의 지방의료원 경영적자 해소책을 발표했다. 김동휘 경기도 보건정책 담당은 “노조가 지금 처럼 경영에 관여하면 적자를 벗기는 어렵고 국비 42억원도 반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의료원의 행태는 더욱 심각하다. 제주의료원은 지난 5월과 지난 7일 등 2차례 걸쳐 6억5천만원을 약제비로 지원하고도 남은 의약품 미지급액은 12억2천여만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장기입원환자들의 퇴원을 권고하고 있다. 의료연대 제주지역지부는 “장기입원환자에 대한 수가보전이 안된다며 추석을 전후해 상당수 장기 입원환자들을 내보내고 약값이 없어 약재를 제때 공급하지 않는 바람에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공공의료원의 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홍성직 제주의료원장은 “약값을 충분히 주지 못할 정도의 만성 적자는 의료원 자구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공공의료 차원에서 중앙과 지방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자체들 ‘극약처방’ 추진 =군산의료원의 매각을 추진해왔던 전북도는 비난 여론 등을 감안해 최근 위탁운영을 재결정했다. 군산의료원의 지난해 적자는 46억원, 누적 적자가 335억원에 이른다. 전국 광역자치단체들도 저마다 지방의료원의 적자 경영 해소를 외치고 있다. 지난 7월 감사원의 전국 지방의료원 감사 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 누적 적자액이 2배 가량 늘고도 일부 원장은 3억6백여만원의 연봉을 챙겼다. 방만한 경영도 수술 대상이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기능보다 경영 성과를 중시한 자치단체의 ‘극약 처방’이 약발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이용길 부위원장은 “공공의료의 위기는 지방의료원이 흔들려서가 아니라 지방의료원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흔들려는 중앙과 지방정부, 민간 병원들 때문”이라며 “지방의료원의 현대화 및 특성화 사업과 병원 수지를 개선할 의료수가 개선책부터 내놓으라”고 말했다.

수원 제주 전주/홍용덕 허호준 박임근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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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이 주고객…“정부 재정지원 필수”
민간병원 포기한 진료 적자키워
수익 아닌 공익성으로 평가해야
한겨레         김양중 기자
        

»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연도별 적자 규모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 빈곤층 무료 진료 등 수익성이 적은 사업과 함께 노후한 시설과 장비 때문에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지방의료원은 필요 없는 것일까?

지방의료원 기능의 하나는 수익성이 낮거나 거의 없는 저소득층 진료와 공공보건의료 사업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병원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2003년 기준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는 지방의료원은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에 비해 입원은 62.8%, 외래 진료는 79%에 이르렀다. 전체 환자 가운데 의료급여 환자의 비율은 지방의료원이 평균 24.0%로,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의 14%의 두 배 가까이 됐다. 문정주 진흥원 공공의료확충팀장은 “의료급여 환자가 많은 지방의료원이 보통 병원보다 수익이 낮지만 그 만큼 저소득층에게는 지방의료원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병원 방문이 불가능한 이들을 위한 무료 방문 진료나 알코올 상담센터 운영, 무료 건강검진 등 민간병원이 담당할 수 없는 의료서비스도 적자를 키우는 요인이다. 이런 사업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나, 지방의료원이 예산 대부분을 낸다. 충남 홍성의료원은 2005년 치매환자관리, 무료방문진료, 건강강좌 등에 7억6천여만원을 썼지만 이 중 88%인 6억7천여만원을 의료원이 부담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의 실행과 낙후된 시설, 인력 등을 보완하려면 재정확보가 관건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지방의료원의 시설 확충을 민간투자방 식으로 해 지난해에는 2005년의 390억원보다 120억원이 준 예산을 배정했다. 임준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방의료원은 민간병원이 수익성 때문에 포기하는 진료 활동 등을 하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재정 지원은 필수”라며 “지방 및 중앙 정부가 지방의료원에 대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가지고 지역 사정에 맞는 시설 확충, 사업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방의료원 운영에 지역 주민의 참가 방안을 마련하고 의료원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민간병원과 같은 수익성이 아니라 공공의료에 맞는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사업비 등으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국립대병원과 협력해 순환 근무 등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기사등록 : 2007-09-26 오후 07: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