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같아도 2000원이 아까워 못가요”
새 의료급여 제도 뒤 병원 더 멀어진 빈곤층
»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인 이광섭(35)씨가 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에서 자신이 겪었던 새 의료급여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수급권자들 “건강유지비론 턱없이 부족” 호소
“진료비 본인부담·선택병의원제 즉각 철회해야”
“척추질환으로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는데 그 때마다 진료비와 약값으로 2천원 정도 내야 합니다. 또 위염, 십이지장염, 우울증까지 진료받는데 한달에 2~3만원은 들어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 곧 죽을 것 같아도 몇 천원이 아까워 병원 가는 게 망설여져요.”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척추질환과 우울증, 위염 및 십이지장염 등을 10년 가까이 앓아온 이아무개(49·서울 동대문구)씨는 9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의료급여 수급권자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나와 새 의료급여 제도 시행 뒤 진료비 부담으로 병원 가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빈곤사회연대 등 17개 단체가 모인 ‘의료급여개혁공동행동’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새 의료급여 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하려 마련했다. 앞서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6천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주는 대신 병·의원 진료와 약값으로 1000~2500원을 부담하게 하고 △만성질환자는 1~2곳의 병원을 정해 무료로 치료받도록 하는 선택병의원제를 시행했다.
대회에선 관절염 등에 쓰이는 파스가 의료급여 혜택에서 빠져 고통을 겪는 수급권자의 증언도 이어졌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김아무개(59·서울 영등포구)씨는 관절염으로 파스에 의존해 살았는데, 파스가 혜택에서 빠진 뒤 이를 이용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어깨, 무릎 등 아프지 않은 관절이 없어 한달 파스비만 4만원 넘게 쓴다”며 “이마저도 부족해 파스를 살 수 없을 때는 집안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다”고 말했다.
이현옥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료팀장은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여러 질병에 시달려 선택병의원 이외의 다른 병원을 이용하다가 진료비 부담이 큰 수급권자도 많다”며 “본인부담금제, 선택병의원제 등 새 제도 시행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의료이용이 크게 제한됐다”고 말했다. 증언이 끝난 뒤 의료급여개혁공동행동은 “정부가 재정 절감을 목적으로 의료급여 제도를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해 빈곤층이 필요한 의료마저도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진료비 본인 부담 △선택병의원제 △파스 비급여 등 빈곤층의 의료이용을 가로막는 새 제도를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현주 복지부 기초의료보장팀 서기관은 “혜택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같다”며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이 선택병의원제나 매달 지급되는 건강생활유지비 등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상담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