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의료급여 제도 뒤 병원 더 멀어진 빈곤층 ,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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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질환으로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가는데 그 때마다 진료비와 약값으로 2천원 정도 내야 합니다. 또 위염, 십이지장염, 우울증까지 진료받는데 한달에 2~3만원은 들어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우습겠지만 곧 죽을 것 같아도 몇 천원이 아까워 병원 가는 게 망설여져요.”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척추질환과 우울증, 위염 및 십이지장염 등을 10년 가까이 앓아온 이아무개(49·서울 동대문구)씨는 9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의료급여 수급권자 피해사례 증언대회’에 나와 새 의료급여 제도 시행 뒤 진료비 부담으로 병원 가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빈곤사회연대 등 17개 단체가 모인 ‘의료급여개혁공동행동’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새 의료급여 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하려 마련했다. 앞서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6천원의 건강생활유지비를 주는 대신 병·의원 진료와 약값으로 1000~2500원을 부담하게 하고 △만성질환자는 1~2곳의 병원을 정해 무료로 치료받도록 하는 선택병의원제를 시행했다.

대회에선 관절염 등에 쓰이는 파스가 의료급여 혜택에서 빠져 고통을 겪는 수급권자의 증언도 이어졌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김아무개(59·서울 영등포구)씨는 관절염으로 파스에 의존해 살았는데, 파스가 혜택에서 빠진 뒤 이를 이용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어깨, 무릎 등 아프지 않은 관절이 없어 한달 파스비만 4만원 넘게 쓴다”며 “이마저도 부족해 파스를 살 수 없을 때는 집안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다”고 말했다.

이현옥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의료팀장은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여러 질병에 시달려 선택병의원 이외의 다른 병원을 이용하다가 진료비 부담이 큰 수급권자도 많다”며 “본인부담금제, 선택병의원제 등 새 제도 시행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의료이용이 크게 제한됐다”고 말했다. 증언이 끝난 뒤 의료급여개혁공동행동은 “정부가 재정 절감을 목적으로 의료급여 제도를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해 빈곤층이 필요한 의료마저도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진료비 본인 부담 △선택병의원제 △파스 비급여 등 빈곤층의 의료이용을 가로막는 새 제도를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현주 복지부 기초의료보장팀 서기관은 “혜택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같다”며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이 선택병의원제나 매달 지급되는 건강생활유지비 등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상담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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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 권리선언문>

의료급여 수급자권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라!
-의료급여수급권자의 건강권 권리선언-

모든 사람은 인간적 존엄성을 가진다. 인간적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살권리’가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삶을 살아갈 권리’, 즉 건강권은 중요한 권리이다. 그래서 국제법의 지위를 갖는 국제인권규약인 ‘사회적․경제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서도 건강권은 중요한 인권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사회와 국가는 특히 사회 소외계층의 건강권 실현에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건강권은 단지 ‘건강할 권리’나 ‘질병이 나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회구성원이면 누구나 누려야할 ‘최고수준의 건강을 누려야 권리’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의료급여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장책이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질병을 치료받지 못하고 키워내고 있는 현실에서 최소한의 병원이용의 경제적 장벽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1일 시행된 의료급여 제도는 최소한의 장벽마저 무너뜨리는 것으로 수급자들의 건강권을 침해하였다.

변경되기 전 의료급여제도에서는 의료급여 수급 1종은 병원에서 법정 본인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았으며 의료급여일수가 많다는 이유로 특정 병원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았다. 건강생활유지비 6천원을 지급하며 본인부담금을 납부하라는 것은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는 6천원어치만 아프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이다. 중복질환이 많은 의료급여수급자들에게 선택병의원을 한곳만 지정할 수 있게 한 것은 병원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더구나 기존 의료급여제도가 의료보장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는 않았기에 이를 개선하는 것이 오히려 시급한 상황에서 수급자들의 인권을 뒤로 돌리는 역행적 조치를 감행한 복지부의 반인권적 조치에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시행령이 바뀌기 전인 기존 의료급여제도에서 마치 의료급여수급권자가 무료로 의료이용을 한 것인 양 언론은 떠들어대지만 실제 수급자들은 의료이용을 하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다. 수술이나 검사를 할 때, 급여가 되지 않는 항목이 많았으며 진단서 발급비용, 교통비 미지급 등 의료이용의 간접비용을 부담하고 있었다. 또한 수급권자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실제 의료급여환자의 종별수가를 건강보험가입자의 75%로 한정하는 현행 제도 때문에 병원에서는 의료급여수급환자들을 달갑게 치료하지 않았다. 수급자들에 대한 차별은 단지 사회적 시선의 문제만이 아니다. 건강보험 가입자와의 차별을 조장하는 현행제도에서 병원에서의 차별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장한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퇴행적 조치인 의료급여제도의 시행령을 바꾸면서도 수급자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았다. 단지 복지예산의 주판알을 굴릴 뿐, 수급권자들의 건강권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인권규약에서도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필수적이며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의 제도를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단 한번도 수급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으며, 단지 예산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바뀐 시행령으로 수많은 의료급여수급권자가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우리는 의료급여 수급권자 건강권 보장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요구한다.

1. 건강하게 살 수 있게 건강권을 보장하라.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건강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라.

1. 의료서비스의 경제적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급여제도의 퇴행적 시행조치인 법정 본인부담금 부과와 선택병의원 제도를 철회하라.

1. 파스 비급여는 수급자들의 경제적 장벽을 높이고 있다. 특정 질환에대한  차별이자 관절염환자의 치료를 막는 파스 비급여를 철회하라.

1.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료급여수급권자의 차별을 조장하는 모든 제도를 시정하라.

1.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주거 및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보완도 함께 실시하라.

1. 의료급여제도의 개선에 당사자인 수급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며,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라.

수급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보건복지부가 앞장서서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하며 수급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찍기’를 감행하고 ‘건강권을 침해하는’ 낙후한 의료복지 현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러나 수급자들의 건강권이 완전히 보장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2007. 10. 9.

의료급여수급자의 피해증언 및 건강권 권리 선언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