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쇠고기…’막 나가는’ 미국에 ‘박박 기는’ 한국
美, “검역 기준 완화” 전방위 압박…한국은 “네! 네!”
2008-02-13 오후 2:37:44
미국 정부가 광우병 감염 위험이 커 수입이 금지된 등뼈를 수출해 놓고도 “미국산 쇠고기 검역 기준을 더 완화하라”고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미국 정부의 압박에 화답해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또 발견되었는데도 미국 측의 해명조차 요구하지 않았던 사실도 확인됐다.
미국은 ‘압박 또 압박’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보건의료단체연합,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13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 사이에 오고간 미국산 쇠고기 관련 비공개 문건을 공개했다. 이들 단체는 이미 지난 1월 22일에도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통해 확보한 미국산 쇠고기 관련 문건을 1차 공개한 적이 있다.
이날 공개된 문건을 보면, 미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검역 기준을 완화하고자 한국 정부를 얼마나 집요하게 압박했는지 알 수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지난 8월 27일 수입이 금지된 등뼈가 미국산 쇠고기에서 발견된 경위를 조사한 미국 농무부의 해명서를 전달하는 공문에서 ‘미국산 쇠고기 검역 기준을 완화하라’고 압박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검역 기준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에 맞추는 작업을 ‘조속히(expeditiously)’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미국 농무부도 해명서에서 “미국 쇠고기의 한국 시장을 확대하고자 검역 기준 완화를 ‘적기에(timely)’ 끝내자”고 압박했다.
한국 정부는 이런 미국 정부의 압박에 곧바로 화답했다. 농림부는 지난 10월 4일 미국산 쇠고기에서 또 다시 광우병 감염 위험 때문에 수입이 금지된 등뼈가 발견되었지만, 미국에 어떤 해명, 조사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민변이 농림부를 상대로 정보 공개 청구를 해 새롭게 밝혀졌다.
한국은 ‘사실 왜곡·은폐’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2일 기자 회견에서 이들 단체가 폭로했던 농림부가 미국 해명서의 사고 원인을 왜곡·은폐해(‘파손된 박스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등뼈가 섞인 게 원인이었다’) 국민에게 발표한 사실도 한 번 더 공식 확인되었다. 농림부는 당시 “미국이 보낸 추가 해명서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고 해명했으나, 정작 추가 해명서를 보면 ‘박스 파손’이 거론될 뿐 그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은 찾아볼 수 없다. (☞관련 기사 : 농림부 ‘딱’ 걸렸다…美 쇠고기 위험 ‘은폐’ 의혹)
추가 공개 문건을 분석한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의 추가 해명서 어디에도 파손 박스 교체가 등뼈가 섞인 원인이었다는 대목은 없다”며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밝힌 것처럼 쇠고기 수출 작업장에서 관리 통제 실패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자 농림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관련 내용을 축소·왜곡·은폐하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재정경제부,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관련 자료를 계속해서 ‘국가 안전 보장’, ‘국익 위협’ 등의 이유를 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며 “앞으로 민변 측은 모든 법적 대응을 통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미국도 광우병 ‘공포’ 팽배
▲ 한 시민단체가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경고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한편, 이날 기자 회견에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는 다시 한 번 미국 정부가 광우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간 고위 관료, 일부 언론은 ‘미국 사람, 현지 교포도 안심하고 먹는 쇠고기를 왜 수입하지 않느냐’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가능성을 지적한 시민·사회단체를 비판해 온 데 대한 반박인 셈이다.
이 단체는 우선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캘리포니아 주의 한 도축장 실태를 촬영해 보도한 사실을 거론했다. 이 도축장에서는 늙고 병든 젖소를 거의 매일 도축해 전국의 학교 급식 재료로 공급했다. 이 젖소 중에는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큰 주저앉는 증상을 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사전에 통제하지 못했다.
이 단체는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으로 늙고 병든 젖소가 도축돼 미국 내 학교 급식 재료로 유통된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미국 내 도축장의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지, 미국 정부가 이런 문제를 결코 사전에 적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런 일은 이번에 처음 발생한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06년 2월 1일 발표된 미국 농무부 보고서를 보면, 2004년 6월부터 2005년 4월까지 감사 대상 도축장 12곳 가운데 2곳이 29마리의 주저앉는 소를 식용으로 공급했다. 또 2004년 8월 발표된 미국 농무부 보고서를 보면, 미국 정부는 광우병 증상을 보이는 소의 75%를 광우병 검사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美 쇠고기 수입, 한미 FTA 중단해야”
이날 기자 회견에 나선 시민·사회단체는 “미국 정부가 광우병 위험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을 지키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 단체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 기준 완화를 전제 조건으로 추진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은 말도 안 된다”며 이날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한 국회를 비판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