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금지 ‘블랙리스트法’ 논란…개인정보 유출 위험
입력: 2008년 02월 16일 03:25:21
혈액 안전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가 채혈금지 대상자 명단을 작성·관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전염병을 앓았거나 약물을 복용해 헌혈에 부적합한 사람을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민감한 개인 병력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돼 법 개정 과정에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14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채혈금지 대상자로부터는 채혈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혈액관리법 개정 법률안’을 심의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1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채혈금지 대상자는 전염병 환자, 약물복용 환자 등 건강 기준에 미달해 헌혈하기 부적합한 사람으로 돼 있다. 정부는 채혈금지 대상자의 명부를 작성·관리할 수 있으며 혈액제제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관련 신원정보를 혈액원에 제공할 수 있다.
혈액원은 채혈 전에 채혈금지 대상 여부와 과거 헌혈경력, 검사결과를 조회하도록 했다. 신원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채혈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혈액관리 강화는 2006년 국감에서 건선치료제 복용자들이 헌혈한 혈액을 가임기 여성들이 수혈받을 경우 기형아 출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의됐다. 이번 개정안은 국회 복지위 소속인 박재완·양승조·문희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법안심사소위에서 통합해 만들었다.
문제는 개정안에 포함된 ‘보건복지부장관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채혈금지 대상자의 명부를 작성·관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개인의 헌혈 의사와 상관없이 질병관리본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개인정보를 받아 ‘헌혈 부적격자 명단’을 만들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상 심사평가원의 개인정보는 범죄 수사나 특정 목적이 아니면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
혈액 안전관리를 책임진 정부가 불량 혈액을 걸러내는 대신 행정편의적으로 신상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는 게 적절하냐는 문제도 논란거리다. 특히 개인 병력이 담긴 신상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상윤 사무국장은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혈액관리만 강조하면서 개인정보 보호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현재의 시스템 내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이런 문제 때문에 국회의 법 개정 추진에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 홍진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