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너희가 물을 물로 보느냐

너희가 물을 물로 보느냐

“물값이 금값될 것” 상수도 민간위탁 둘러싼 전쟁… ‘물산업육성법’ 시행되면 외국자본에도 개방

▣ 남원·전주·논산·대전=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서 지리산 흑돼지집 ‘유정가든’을 운영하는 김충수(41)씨는 대뜸 목소리부터 높였다. “시장이 상수도를 민간위탁 한다잖아요.” 이점수 남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이 말을 받았다. “안 그래도 지난해부터 그런 소리가 들리긴 하더만요. 오늘 면사무소에서도 뭐가 있다던데.” 김씨가 부산스럽게 물컵을 내려놓았다. 1월24일, 눈 내린 산내에서 1732m의 높이를 자랑하는 지리산 반야봉이 정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 1월24일 상수도 민간위탁에 반대하는 남원시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청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원 시민들의 촛불집회는 지난해 12월4일부터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중이다. (사진/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수공에 맡긴 지자체 11개로 늘어

그날 오후 2시30분, 산내면 이장들은 ‘시정 설명식 및 주민과의 대화’가 열리는 면사무소 2층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면사무소 앞에는 남원 지역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 남원 경실련 등 21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남원시 상수도 민간위탁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관계자들이 나와 “수돗물 민간위탁 반대”을 외치고 있었다. 같은 시간 남원시는 이장들 앞에서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가 제작한 10분 분량의 상수도 민간위탁 홍보 동영상을 틀고 있었다. “통·리장은 수자원공사의 2중대가 아닙니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준비해온 패널을 흔들어댔고, 최중근 시장은 민간위탁 진행 여부를 묻는 이장들의 질문에 “시민들의 이익이 되는 길이라면 반대해도 간다”고 말을 끊었다.

수돗물 민간위탁을 둘러싼 남원시의 전쟁이 시작된 것은 2006년께다. 남원시는 2006년 4월 수공에 남원시 상수도 운영 효율화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맡겼고, 수공은 여섯 달 뒤인 그해 10월 ‘남원시 상수도 운영효율화사업을 위한 사업진단 보고서’를 내놨다. 결론은 예상대로 “남원의 상수도는 물 전문 기관인 수공에 맡겨 위탁관리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뒤늦게 시의 상수도 민간위탁 계획을 알게 된 남원의 21개 시민사회단체들은 2007년 10월24일 대책위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남원시는 지난해 11월23일 상수도 민간위탁 안을 남원시의회에 제출했고, 대책위는 이에 질세라 12월4일부터 시청 앞에 천막을 쳐놓고 철야 농성을 시작했다. 양쪽의 극한 대립이 이어지자 남원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12월12일 시가 제츨한 상수도 민간위탁 안에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사람들이 값싸고 질 좋은 수돗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이, 지방 중소 지자체에서는 수년 전부터 소리 없는 물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소희 전공노 대외협력부장은 “상수도 민간위탁을 둘러싼 지방 중소 지자체들의 싸움은 하나의 큰 흐름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수도 민간위탁을 둘러싼 논쟁은 낡고 병들어 개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농어촌 상수도 정책 실패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다툼이기도 하고, ‘물’이라는 인간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물질을 ‘공공재’로 볼 것인가, ‘경제재’로 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투쟁이기도 하다. 2004년 3월12일 논산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수도 관리·운영 업무를 수공에 맡긴 뒤, 같은 길을 택한 지자체 수는 2008년 2월 현재 정읍·사천·거제 등 11개로 늘었다. 수공과 기본 협약을 맺고 정식 계약을 맺기 위해 논의를 벌이는 지자체는 그 세 배인 33곳이나 된다.


△ 상수도사업소의 수도관이 닿지 못하는 농어촌 오지에서는 마을 상수도를 통해 물을 정수해 마신다. 남원 산내면에 자리한 한 ‘마을 상수도.’(사진/ 한겨레21 길윤형 기자)

김치응 논산시 수도사업소장은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에 상수도를 끝까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91.3%로 올라섰지만, 지방 중소 도시의 수돗물 여건은 뿌리부터 썩어들고 있었다. 상수도관은 오래 사용하면 안에 녹이 슬고 물이 새기 마련이다. 1990년대 말에 들어서며 60~70년대에 대규모로 매설된 상수도관의 내구 연한이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치적에 관심을 갖게 마련인 지자체 장들은 병들어가는 상수도를 외면했고, 중앙정부는 “지방 상수도는 지자체의 고유 업무”라며 눈을 감았다.

돈이 많이 드니까 위탁해야 한다?

상수도 민간위탁을 결심했을 때 논산의 사정은 어땠을까? 상수도의 효율을 재는 가장 대표적인 척도는 상수도 사업자가 만들어 내보낸 수돗물 가운데 요금이 걷힌 물의 양을 뜻하는 ‘유수율’(有收率)이다. 2003년 현재 상수도 보급률은 56.9%에 머물렀고, 유수율은 58%였다. 물 100t을 만들어 보내면, 실제 요금이 걷히는 물은 58t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김치응 소장은 “이래서는 손해가 안 날 수 없다”고 말했다. 민간위탁이 시작되기 전까지 3년 동안 논산시에서 상수도 쪽에 투자한 돈은 23억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관의 노후화였다. 논산 시내 전체 관로 534km 가운데 20년 이상 된 노후 관로는 41%였다. 관을 교체하려면 돈이 든다. 이문옥 전주시민회 상임운영위원은 “어떤 지자체장이 티 안 나고 고생만 하는 상수도 사업에 해마다 큰 예산을 쏟아붓겠냐”고 말했다. 수공은 상수도 관리를 시작한 2004년 3월12일 이후 논산시 상수도 운영 효율화 사업을 위해 205억원을 쏟아부어 유수율을 2007년 현재 67%로 올렸다. 수공 쪽은 논산 지역의 고객 만족도도 2004년 57점에서 2007년 현재 67점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송운 논산 수도서비스센터장은 “2003년 수공에 상수도를 맡긴 논산시의 선택은 최선이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논산시장은 골치 아픈 상수도 업무를 수공에 떠넘기고 수돗물 관리 책임을 벗어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위탁 뒤 논산의 수돗물 사정이 나아졌다는 수공의 주장에 토를 달긴 힘들다. 대신 물값이 어느 정도 오르긴 했다. 논산의 t당 수돗물 평균 단가는 2003년에는 614.7원이었지만, 수공이 위탁을 시작한 2004년에는 38.3%가 올라 851원이 됐다. 그러나 가구당 추가 부담 수준은 몇천원 선에 불과해 시민들은 요금 인상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나라에서 수돗물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지자체가 관내를 흐르는 강물을 퍼올려 수돗물로 정수하는 ‘지방상수도’고, 다른 하나는 수공이 만든 수돗물을 사다 먹는 ‘광역상수도’다.

지방의 상수도 시설을 떠안은 수공이 가장 먼저 벌이는 일은 지자체의 자체 상수도 생산시설인 정수장을 폐쇄하는 것이다. 자기네가 생산하는 광역상수도를 팔기 위해서다. 2001년 논산은 자체 정수장에서 해마다 725만t의 물을 만들고, 627만t을 수공에서 사먹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53:47이었다. 그러나 논산시는 상수도 위탁을 전후해 연무·강경·연산 정수장을 차례로 폐쇄했다. 2006년 논산시에서 자체 생산한 물은 17만5천t으로 줄어들었고, 사먹는 물은 1274만t으로 늘었다. 비율은 이제 2:98이다. 자체 생산시설을 잃은 논산시는 30년으로 정해진 위탁 기간이 끝나더라도 계속 비싼 수공의 광역상수도를 사먹을 수밖에 없다.

전주, 시가 끝까지 책임지기로

수공의 광역상수도 가격은 그동안 가파르게 상승해왔다. 1997년 t당 133원에 불과했던 ‘정수’ 가격은 2006년 현재 394원이다. 2006년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997년 2317억원에 불과했던 광역상수도 판매 수입은 2006년 7310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민간위탁은 대세인가. 애초 추진하던 민간위탁 계획을 백지화한 전주시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전주에서 상수도 민간위탁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4년 11월부터다. 남원에서처럼 전주에서도 상수도 민간위탁을 막으려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운동이 거세게 전개됐다. 2005년 6월9일 전주시민회 등 18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전주시 상수도 민간위탁 반대 물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김완주 당시 전주시장과 담판을 지었다.


△ 전주시는 한국수자원공사에 민간위탁을 주는 대신 14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수도시설을 개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전주시 상수도사업소의 한 민원 창구 모습.

당시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이문옥 전주시민회 상임운영위원은 “재임 기간에 상수도를 그대로 방치한 김완주 전 시장의 책임을 호되게 물었다”고 말했다. 전주시의 상수도 유수율은 1999년 70.3%에 달했지만, 민간위탁 논의가 벌어지던 2005년에는 63.1%로 떨어진 상태였다. 전북도지사 자리를 노리고 당시 강현옥 도시사와 열린우리당 후보 자리를 다투던 김 시장은 반대 여론이 커지자 태도를 바꾼다. 시민사회단체 쪽에 민관협력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박재순 전공노 전북지역본부 선전부장은 “위원회에서 위탁 문제를 재논의해보자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위탁 계획 백지화와 같은 뜻이었다”고 말했다.

안석 전주시 상수도사업소 급수과장은 “민간 사업자는 어찌됐건 이윤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가 수돗물을 끝까지 책임져보자고 결심을 한 거죠.” 전주시는 곧 유수율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투자계획을 내놓는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 동안 1436억원을 쏟아부어 2006년 현재 64.8%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시내 유수율을 85%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전주시는 유수율을 목표치만큼 올리면 해마다 80억~100억원어치의 물값을 아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 돈으로 노후관 교체 등에 들어간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전주는 다른 지자체의 대안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가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농어촌 상수도 정책 실패의 책임을 주민들의 가난한 지갑에 전가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의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낙후된 농어촌 상수도를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대신, 상수도 사업을 시장 경쟁에 맡기는 쉽고 위험한 길을 택했다.

수에즈·베올리아·알베에…

그 결과물이 올해 상반기에 입법 예고될 예정인 ‘물산업육성법’이다. 환경부는 앞으로 164개로 쪼개진 상하수도 사업을 30개 유역권으로 통합하고, 상수도 관리운영권을 지자체, 수공, 국내 민간기업, 외국자본 등에 개방할 방침이다. 법이 통과되면 낙후된 시설에 기대 세금을 부과해가며 생산원가보다 싼 수돗물을 공급해오던 농어촌 지자체들은 ‘비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통폐합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공 등 토종 세력과 수에즈(프랑스)·베올리아(프랑스)·알베에(독일)·아그바(스페인)와 같은 초국적 물자본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평소에도 도시민들보다 2~3배 비싼 돈을 내야 했던 농어촌 주민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납득하기 힘든 물값 폭등을 감수해야 될지 모른다.

△ 지방 중소 도시의 정수장은 규모가 작아 수돗물 생산원가가 대도시보다 높다. 하루 4만t의 수돗물을 생산하는 전주시 대성정수장.

1월24일 저녁 7시, 임성호 전공노 남원시지부 민영화 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남원시청 앞에서 촛불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남원 시민의 생명인 수돗물을 기업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만들 순 없다”고 말했다. 남원시는 그동안 1t당 1218원에 수돗물을 만들어 t당 400원씩 손해보며 794원에 팔아왔다. 농어촌 상수도가 문제라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부담 주체를 정해 개선하면 된다. 아무도 불만이 없는 상식적인 일 처리를 ‘문제’라 우기며 ‘효율’과 ‘민영화’를 외치는 정부를 보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우리나라 상수도 산업의 특징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는 ‘빈익빈 부익부’가 아닐까 싶다. 2006년 12월 현재 우리나라 인구 4962만 명 가운데 수돗물을 보급받는 인구는 전체의 91.3%인 4530만 명으로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시·도별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100%), 부산(99.5%), 대구(99.6%), 인천(97.6%) 등 대도시들이 10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는 데 견줘, 농·어촌 지역인 충청남도(64.4%)와 전라남도(67.9%)는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상북도도 78.7%로 대도시에 견줘 낮은 수준이다.

수돗물은 지자체가 관내를 흐르는 강물 등을 취수해 마시는 ‘지방상수도’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생산하는 정수나 원수를 사다 마시는 ‘광역상수도’로 나뉜다. 1994년 낙동강물 페놀 오염 등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애초 건설부(지금의 건설교통부) 관할이던 수도 업무의 일부가 환경처(지금의 환경부)로 이전됐다. 이후 1995년부터 지방상수도는 환경부, 광역상수도는 건설부가 관리하는 이원 관리 체계가 유지돼왔다. 지자체는 ‘정수’ 기준으로 t당 394원이나 하는 비싼 광역상수도보다 직접 만들어 마시는 지방상수도를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그 결과 수도 산업에서는 4조원 넘는 중복 투자가 이어졌다. 감사원은 2005년 11월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 ‘상수도 개발 및 운영실태’에서 1995년 이후 이원화된 우리나라 상수도 사업 정책의 전반에 대한 호된 질책을 쏟아놓았다. 환경부와 건교부는 대도시와 농어촌 사이의 수돗물 격차를 좁힐 고민은 접어두고, 별도의 협의 절차도 없이 각각 지방상수도와 광역상수도에 중복 투자를 거듭했다. 그 때문에 1995년 현재 69.5% 수준을 유지하던 상수도 평균 가동률은 2003년 현재 54.5%로 떨어졌다.

지방상수도의 노후화는 환경부의 논리대로 농어촌 상수도 사업소의 비전문성과 무능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환경부의 탓도 크다. 환경부는 2001년 2월23일 ‘상수도유수율제고업무처리규정’(환경부 훈령 486호)이란 것을 만들어 지자체에 5년에 한 번씩 유수율을 높이기 위한 종합계획의 제출을 의무화했지만, 이를 이행한 지자체는 하나도 없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수돗물도 양극화

정부는 지역 격차 줄일 고민 대신 중복 투자만 거듭

우리나라 상수도 산업의 특징을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는 ‘빈익빈 부익부’가 아닐까 싶다. 2006년 12월 현재 우리나라 인구 4962만 명 가운데 수돗물을 보급받는 인구는 전체의 91.3%인 4530만 명으로 이미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시·도별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100%), 부산(99.5%), 대구(99.6%), 인천(97.6%) 등 대도시들이 100%에 가까운 수치를 보이는 데 견줘, 농·어촌 지역인 충청남도(64.4%)와 전라남도(67.9%)는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상북도도 78.7%로 대도시에 견줘 낮은 수준이다.

수돗물은 지자체가 관내를 흐르는 강물 등을 취수해 마시는 ‘지방상수도’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생산하는 정수나 원수를 사다 마시는 ‘광역상수도’로 나뉜다. 1994년 낙동강물 페놀 오염 등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애초 건설부(지금의 건설교통부) 관할이던 수도 업무의 일부가 환경처(지금의 환경부)로 이전됐다. 이후 1995년부터 지방상수도는 환경부, 광역상수도는 건설부가 관리하는 이원 관리 체계가 유지돼왔다. 지자체는 ‘정수’ 기준으로 t당 394원이나 하는 비싼 광역상수도보다 직접 만들어 마시는 지방상수도를 사용하기를 선호한다.

그 결과 수도 산업에서는 4조원 넘는 중복 투자가 이어졌다. 감사원은 2005년 11월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 ‘상수도 개발 및 운영실태’에서 1995년 이후 이원화된 우리나라 상수도 사업 정책의 전반에 대한 호된 질책을 쏟아놓았다. 환경부와 건교부는 대도시와 농어촌 사이의 수돗물 격차를 좁힐 고민은 접어두고, 별도의 협의 절차도 없이 각각 지방상수도와 광역상수도에 중복 투자를 거듭했다. 그 때문에 1995년 현재 69.5% 수준을 유지하던 상수도 평균 가동률은 2003년 현재 54.5%로 떨어졌다.

지방상수도의 노후화는 환경부의 논리대로 농어촌 상수도 사업소의 비전문성과 무능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환경부의 탓도 크다. 환경부는 2001년 2월23일 ‘상수도유수율제고업무처리규정’(환경부 훈령 486호)이란 것을 만들어 지자체에 5년에 한 번씩 유수율을 높이기 위한 종합계획의 제출을 의무화했지만, 이를 이행한 지자체는 하나도 없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상수도 민영화, 어떤 방식일까

운영을 전문기업에 위탁, 요금은 이윤 뽑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물산업 육성정책의 핵심은 ‘상수도의 민영화’다. 정부의 민영화 계획은 상수도 기반시설의 소유권까지 민간 자본에 넘기는 완전 민영화가 아닌 운영을 전문기업에 위탁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물산업 육성법’(가칭)을 새로 만들어 그동안 국가공사나 지방공사 등에 한정돼 있던 수도사업자의 자격을 민간기업에까지 확대하는 방침을 정했다.

물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사실상 시장 내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경쟁’은 어떻게 이뤄지나. 물 기업들은 상수도를 위탁하려는 지방자치단체 쪽에 더 나은 운영 조건을 제시하며 경쟁한다. 시장 안에서의 경쟁이 아닌, 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이다.

그러나 기업은 돈이 되지 않으면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방 상수도는 대부분 만성적 적자에 시달린다. 정부는 이를 위해 164개로 쪼개진 상수도를 유역별로 통합해 30개 정도로 합칠 계획이다. 정부는 상수도의 운영을 민간기업에 맡기는 대신 지자체가 적절히 관리·감독하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는 자본 유치를 위해 신도시 등을 만들 때 민간사업자에게 투자 기회를 주고 부가가치세 등도 감면해줄 방침이다.

정부의 구상대로라면 앞으로 수돗물 요금은 공공성에 대한 고려 대신 사업자가 투자금에 대한 이윤을 뽑을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수도 요금은 1t에 537원으로 민영화가 추진된 영국(1820원), 프랑스(1579원), 독일(2446원)의 20~30%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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