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부르는 공장형 축산
입력: 2008년 04월 16일 18:14:36
고 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돼지, 오리 등의 동물에게 옮길 수 있는 인수 공통 전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08년 4월8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379명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무려 239명이 사망했다. 국내의 전문가들과 정부 당국자들은 철새나 변종 바이러스를 조류 인플루엔자의 원인으로 지목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한 구실 아니냐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 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철새를 매개로 전염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나 자동차, 사료 등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동물의 분변이나 공기를 통해서도 바이러스가 옮겨졌을 수 있으며,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여행객이나 동물을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하다. 게다가 바이러스는 환경과 숙주에 적응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돌연변이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삶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철새나 변종 바이러스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공장형 사육 방식으로 육류를 생산하는 현대 축산업이야말로 대재앙의 근본 원인이 아닐까?
닭은 자연 상태에서 평균적으로 5~7년을 생존할 수 있다.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최장수 닭은 16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의 공장형 축산업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수익을 내기 위해 닭의 평균 수명을 대폭 줄여 버렸다. 닭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육계의 평균 수명은 6~7주에 불과하다. 그나마 달걀을 생산하기 위한 산란계는 형편이 조금 나아서 550일까지 살 수도 있다. 그 대신 산란계는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강제로 털갈이를 당하고, 어둠 속에 갇혀 지내는 끔찍한 감옥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 축산업은 닭고기와 달걀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좁고 밀폐된 공간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병아리들을 몰아넣는다. 병아리들이 서로 쪼아서 죽이지 못하도록 생후 10일이면 강제로 부리를 싹둑 잘라 버린다. 밀집사육에 따른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거의 매일 항생제를 사료나 물에 섞어 먹인다. 더군다나 닭들은 유전자조작 방식으로 생산된 GMO 옥수수 가루에 각종 화학물질을 버무려놓은 모이를 강제급식당하게 된다. 더 빨리 살이 찌고 더 많은 달걀을 낳을 수 있도록 성장촉진제와 성장호르몬을 먹이는 것도 필수 코스에 속한다.
공장형 농장에서 사육당하는 닭들은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눈에 띄게 떨어져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치명적이다. 반면 야생철새들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자연의 지혜를 터득하여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인간이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박멸하거나 야생철새를 멸종시키겠다는 생각은 환경 대재앙을 불러올 오만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조류 인플루엔자 방역대책은 경제적 논리에 눈과 귀가 멀어 이윤만을 추구하는 공장형 축산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박상표 수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