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완화’를 ‘강화’로 해석… ‘치명적’ 실수로 쇠고기 새국면 돌입

농식품부 “美 식약청 보도자료 번역 과정 오류 인정”

[CBS정치부 안성용 기자] 우리 정부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 ‘완화’ 조치를 ‘강화’ 조치로 잘못 해석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로 인해 광우병 감염 우려가 높은 30개월 이상된 미국산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 수입 허용이라는 치명적 결과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권고한 강화된 사료 조처를 공포할 경우 30개월 이상의 소에서 생산산 쇠고기도 수입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일 정부 설명자료에서는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검사에서 함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돼지 사료용 등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게 미국의 강화된 사료 금지조처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미국 관보에는 “도축검사에서 합격하지 못한 소라도 30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뇌.척수 제거와는 상관없이 사료금지 물질로 보지 않는다”는 정반대의 완화된 사료 조치 내용이 실렸다.

이에 대해 협상에 참여했던 농림수산식품부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은 “미국 식품의약청이 공개한 영문 보도자료를 우리 쪽이 잘못 해석한 데서 빚어진 실수였다”며 미국 식약청 보도자료 번역 과정에서의 오류를 인정했다.

이상길 단장은 또 미국이 2005년 10월 입안예고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그대로 공포·시행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근 연방관보로 공포한 내용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 임하면서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한 ‘지레짐작’ 만으로 협상에 임했음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 졸속.부실 협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치명적인 실수가 드러나면서 국민 대다수와 통합민주당 등 야당의 고시연기와 재협상 요구가 힘을 받는 등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통합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을 통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이상의 소를 들여오는 조건으로 미국의 동물사료 금지 조치가 강화됐다고 큰 소리를 치던 정부는 이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을 경질하고 협상을 다시하라”고 재협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편으로는 “동물사료 금지조치에 관해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기망한 것인지, 한국 정부가 눈을 감아준 것인지, 아니면 한국 정부가 국민을 기망한 것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며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부가 영문 오역을 인정한 것은 협상의 주요 내용에 대한 흠결”이라며 “정부는 조속히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정조사를 통해 중과실의 책임소재를 가려야 할 것이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이런 야당의 재협상 요구는 점차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식을줄 모르는 국민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와 만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은 13일 손학규 대표 등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관 고시 유예와 재협상 촉구 결의 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진보신당 노회찬 의원은 수입중단 조처로 미국산 쇠고기가 보관돼 있는 부산세관을 방문해 정부 고시 유보와 통관 반대 기자회견을 갖는다.

무엇보다 13일 14일 이틀간 열리는 한미 FTA 청문회에서정부의 졸속 협상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총공세가 예상된다.

영문 오역을 인정한 정부가 야당의 고시 유예와 재협상을 유예 요구에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