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국민은 진실만 듣고 싶다
2008 05/20 뉴스메이커 775호
정부-민간단체, 자신들 유리한 주장 되풀이
쇠고기 청문회 불구 국민들 혼란 해소 안돼
한국음식업중앙회가 발행하는 월간 잡지 ‘뚝배기’의 2006년 12월호에 실린 미국 쇠고기 광고.
미국산 쇠고기를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이영호 통합민주당 의원은 5월 7일 국회 쇠고기청문회에서 ‘아트’(예술)와 ‘사이언스’(과학)라는 말을 꺼냈다. 정치적인 주관적 입장(아트)과 과학적인 객관적 입장(사이언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정부 측 과학자(의사·수의사 포함)와 민간단체 측 과학자들의 상반된 이야기를 듣는 국민으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 측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과학적 증거를 들이대고, 민간단체 측은 그들 나름으로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자료만 설명한다.
‘아트’를 빼고 ‘사이언스’만 들어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프리온, MM형 유전자, BSE, OIE, SRM, vCJD란 용어만 들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어려운 용어를 떠나 국민들이 묻고 싶은 질문은 한 가지뿐이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요?”
5월 7일 쇠고기 청문회장은 광우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국민의 눈이 집중됐다. 청문회에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광우병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광우병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 장관은 “만약 광우병이 일어나면 책임지고 (수입) 중단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직후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이들은 온라인인 인터넷과 오프라인인 촛불 문화제를 통해 정부의 협상 자세를 성토하고 있다. ‘졸속’이라는 평가를 받는 쇠고기 협상으로 광우병의 위험은 증폭됐다. 이 중 일부는 괴담으로, 어떤 것은 분명한 진실로 드러났다.
국민은 진실만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과학적 진실은 아직까지 광우병의 모든 것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광우병 논란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과학적으로 분명하지 않는 사실을 토대로 여기저기에서 유리한 입장을 끌어대기 위해 확률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청문회에서 차명진 의원은 “일본 연구에 따르면 미국 소로 인한 광우병 발병 확률이 47억 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신동천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 측 설명회에서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1000만 분의 1이냐 2냐에 대한 얘기지 그냥 1이냐 2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제로(0)는 아니지만 극히 미미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적 진실, 모든 것 규명 못해
확률 논쟁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대표는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저절로 생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인간이 살고 있지 않느냐”면서 “제로에 가깝다는 확률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장난일 뿐 과학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확률 논쟁은 불확실성에 대한 통제 여부와 연결돼 있다. 김 대표는 “불확실성을 갖고 있지만 사전 예방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이야기해야지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과학자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주장 같지만 신 교수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신 교수는 청문회에서 “(광우병 발생) 확률이 적다고 해도 국민 건강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정책에서는 위험이 통제 범위 안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우병이 현대 사회에서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고 보는 만큼 불확실성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광우병의 위험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하는 정책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광우병이 ‘위험하다’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하다’와 ‘안전하지 않다’라는 말은 비슷한 의미로 들린다. 하지만 미국산 소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두 단어의 차이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위험하지 않지만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예가 지난해 정부 측 자료에도 드러난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광우병이 아직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광우병 방역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에서는 1997년부터 반추동물사료에 반추동물 유래 단백질의 사용을 금지했으나 소 이외 일부 돼지 및 가금 사료에도 반추동물 유래 육골분을 사용하고 있다. 광우병의 교차오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도축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는 도축 과정에서 0.1%에 한해서만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눈으로 봐서 괜찮은지 보는 검사도 도축하는 소의 5~10%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34마리 소가 광우병에 걸렸지만, 미국보다 광우병과 관련해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축 소에 대한 전수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청문회에서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 도축소의 영상물은 동물 학대 영상이 아니라 광우병으로 의심될 수 있는 기립 불능소가 도축 과정에서 어떻게 검역을 빠져나가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이 영상물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검역시스템이 얼마나 광우병에 취약한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농림부에서 작성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 분석 검토’에서는 “30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되지 못하였음”이라고 나타나 있다. 광우병이 발생한 19만여 건 중 99.97%가 30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 자료에서는 또 “미국의 BSE(광우병) 통제체계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30개월령 미만 조건 불가피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협상 기본 방향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180도 뒤집혔다.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30개월 이상인 소의 고기까지 완전 개방하는 것이다.
인간 광우병 잠복기 10~40년
20개월, 30개월이 논란거리지만 미국의 도축장에서 이 소의 월령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은 없다. 개체이력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에 많아야 15~20%의 소만 월령을 알 수 있다. 도축장에서 치아를 통해 월령을 추정할 뿐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세 번째 광우병 발병 소의 예를 살펴보면 미국소의 광우병 위험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2006년 2월 27일 앨라배마의 한 농장에서 암소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다음 날 안락사한 암소의 사체는 매장됐다. 이 암소의 뇌 연수 일부분인 빗장(Obex)를 검사한 결과 광우병으로 밝혀졌다. 다시 소를 파헤쳐 조사했지만 인식 도구가 없었다. 사체의 머리 검사 결과 태그나 태그가 붙어 있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소는 2004년 앨라배마의 농장으로 왔다. 미국 농무부(USDA) 동식물검역소(APHIS)의 역학조사보고서에서는 연관이 있는 25개 농장을 조사했지만 추적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의 결론을 줄이면 다음과 같다.
“소들은 구별할 방법도 없고, 크기나 색깔이 비슷하게 생겨서 주인도 잘 모른다. 대부분 소는 태어난 해에 팔려서, 죽을 때까지 몇 번씩이나 팔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디에서 왔는지 밝힐 수 없었다.”
이 소는 10살로 판단됐다. 1997년 사료 강화 조치 이전에 광우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5월 6일 신문광고에서 ‘1997년 동물성 사료 급여 금지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소는 단 한 마리도 광우병에 걸린 바가 없습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10년령인지 어떻게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냐는 것이다. 국내 일부 수의사는 이 소의 치아 사진을 본 후 2년이 되지 않은 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치아로 나이를 감정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식이 아니며 불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문은 광우병으로 밝혀진 것이 3마리일 뿐 전체 1억 마리에 달하는 미국 소 중 몇 마리가 광우병에 걸려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부 측 자료에 따르면 인간 광우병의 잠복기는 10~40년이다. 유럽의 경우 1989년과 1990년 소 광우병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인간 광우병은 1990년대 중반쯤 많이 나타났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미국에서 소 광우병이 2003년 처음 나타난 만큼 2013년이 지나봐야 미국산 소의 광우병이 인간에게 위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