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와 美 쇠고기 사태는 닮은꼴”
[토론회] 정부는 왜 ‘괴담’을 퍼트리는가?
2008-05-20 오전 9:27:59
”배아줄기세포 사태와 광우병 사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19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을 놓고 2005년 ‘황우석 사태’와 비교했다.
우희종 교수는 “상황 제공자와 주장하는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두 사태를 대하는 정부와 주류 언론, 그리고 관변 과학자들의 태도가 똑 같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9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주최로 서울 대학로 서울대 의과대학 함춘회관에서 열린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한국사회의 대응방안’ 토론회 발제문에서다.
’권위’ 내세워 끊임없이 합리화…사태만 키우고
우 교수에 따르면 배아줄기 사태의 상황 제공자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였다면 이번 사태는 정부(농림수산식품부)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 이전 사태의 예상 효능은 ‘원천기술로 인한 국익’이었으며, 이번 사태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통한 국익’을 예상 효과로 내세우고 있다.
또 황우석 사태는 과학적 사실을 조작한 점이 문제가 됐다면, 이번에는 정부가 검역 주권을 포기하고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황우석 박사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권위를 내세워 과학적 업적을 주장한 것과, 정부가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내세워 ‘안전한 수입조건’을 강조하는 점도 비교된다.
그러나 언론과 과학자들에 의해 드러난 실태는 앞서는 ‘논문 조작’, 이번에는 ‘무조건적 굴욕 협상’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배아줄기세포 사태에서는 ‘끊임없는 변명’이 상황을 증폭시켰다면, 이번 사태에서 정부 역시 ‘끊임없는 합리화’로 파문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두번 모두 상황을 조기에 끝내려 서두르는 자세였다. 주류 언론은 양쪽 다 ‘무조건적 지지’로 일관했으며, 관변 과학자들도 옹호하기에 바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과 함께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앞선 사태에서는 ‘음모론’이었으며, 쇠고기 사태에서는 ‘적색론’이다.
우희종 교수는 “일반 시민의 태도가 앞서 대부분 지지였던 반면 이번 사태에서는 대부분 반대라는 점이 주목된다”며 “예전엔 불교계가 맹목적 지지를 보낸 반면, 이번엔 기독교가 지지를 보내는 것도 다른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황이 진행될 수록 결국 앞선 사태에서는 논문 조작 사실을 인정했고 결과는 불구속 기소였다”며 “이번 사태 역시 OIE 기준의 변경 가능성 밎 짜맞추기 기준을 작성한 사실을 정부가 인정한 뒤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누가 ‘비과학적’ 괴담을 퍼트리나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태를 확산시키고 있는 일명 ‘정부 괴담’에 관해 의학, 경제학을 포함한 과학적 사실을 논하는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우 교수는 “30개월 미만 살코기 수입에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시민들이 전면 개방이라는 정부의 졸속 협상에 분노하면서 사건은 사태로 번졌다”며 협상 기준을 놓고 주장을 번복하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우 교수는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광우병을 잘 알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기준을 적용해야 했다”며 광우병 발병이 많은 EU와 사례가 적은 미국의 기준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발병한 개체 내에서 질병 진행에 따른 동일한 병원체의 증식유형이나 감염 조직의 양상은 국가를 불문하고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최근 개정된 EU의 규정은 만약 특정위험물질(SRM)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먹는 부위뿐만 아니라 동물 사체의 부위 전체를 SRM으로 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심지어 SRM과 접촉만 해도 그 물질은 SRM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 EU의 규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EU는 각국 형편에 따라 노출의 정도가 다른만큼 각자의 규제 장치를 설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기준을 무비판적, 비과학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광우병에 걸린 소의 숫자와 인간광우병이 점점 줄어드는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과학적 불확실성이 많은 분야에 존재한다는 게 세계 과학자들의 공통 견해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광우병은 5년내로 사라질 질병’이라는 괴담이 돌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론에 나선 권호장 단국대 의대 교수는 “과학적 증거가 불확실하더라도 위험이 있을 때 사전에 주의 조치를 취하는 ‘사전 예방의 원칙’은 환경 및 먹을거리 정책의 기본 원칙”이라며 “이는 일부에서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권호장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한 뒤 수입중단의 과학적 근거란 한국에서 수십 명, 수백 명 수준으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 뿐”이라며 “결국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사전 예방의 원칙에서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 대 경제의 싸움…그러나 협상은 여전히 ‘비효율적’
그렇다면 정부가 이처럼 ‘비과학적 근거’에 대한 비판을 무릅쓰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이번 사태가 과학 대 과학인것처럼 얘기되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 대 경제의 싸움”이라며 “미국과 정부는 지금 ‘경제’, 그중에서도 대자본, 강대국의 논리를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태인 교수는 “사전 예방의 원칙과 대립되는 것이 증명 우선의 원칙”이라며 “물건을 사는 쪽에서 규제가 왜 필요한가를 먼저 증명하라는 논리”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는 1980년대 미국에서 개발된 논리”라며 “당연히 두 개가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실제로 광우병 위험을 지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며 “초기 시행착오를 겪은 영국은 현재 연간 약 60조 원을 광우병 예방 비용으로 쓰고 있다. 이는 정부가 주장하는 한미 FTA에 따른 이익과도 맞먹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반면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 최대한의 조처를 취한 일본은 상황에 따라 비용을 최소화했고 현재 1조 3000억 원 정도를 쓰고 있다”며 “그런데 미국은 이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영국의 90년 초반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사실 미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가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가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고 본다”며 “그러나 축산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시행을 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실장은 “두당 4만5000원~6만 원의 이익을 내는 미국 축산업자들은 두당 2만 원이 드는 광우병 검사를 하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검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두당 2만 원의 검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한국 사람들이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은 소를 먹어야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우 실장은 “쇠고기 협상이 FTA를 위해 내준 것이라는 건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 협상은 ‘전체를 받지 않으면 하나도 받지 말라’는 FTA 원칙에 따라 그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질타했다.
강이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