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품 관광, 동남아 저가 관광
동남아 의료관광 성공 이유는
저임금 노동력이 기반이다
동남아 국가도 하는데 우리가 왜?
이런 논리는 영리병원 허용론 유포용
여당 정책위의장 현혹당할 논리 아니다
의료민영화 논란이 확산되는 국면에서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영리병원 허용론을 언급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영리병원을 통한 서비스 고급화가 의료관광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리병원 허용을 통한 의료관광 활성화는 국내 의료관광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보려고 한다.
의료관광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명품’ 의료관광이다. 암에 걸린 재벌 총수들이 미국 유수병원을 찾는 것이 대표적 사례인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동, 남미, 아시아 부자들이 주 고객이다. 이 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둘째,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저가’ 의료관광이다. 타이, 인도 등 아시아 개발도상국과 폴란드 등 과거 사회주의 체제 아래 있던 동구권 국가 등이 주도하고 있고, 미국 등 선진국 의료소외계층이 주 고객이다. 미국 환자들이 자국의 수없이 많은 ‘명품’ 병원을 뒤로 하고, 타이나 인도를 찾는 이유는 매우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자국 병원을 이용하면 파산에 빠지지만, 동남아로 가면 수년 동안 허리띠 조이고 살면 감당이 가능한 수준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힘멜스타인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2001년 미국 파산자 중 54.5%가 의료비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타이, 인도 등의 의료관광 성공 요인을 살펴보자. 첫째, 값싼 인건비와 부대비용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병원서비스 원가의 절반가량이 인건비인데, 국가별 인건비를 비교해 보면 경쟁력의 실체를 쉽게 알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자료를 기준으로 2003년 한국제조업 노동자 월 평균 인건비를 100으로 보면, 타이는 9.6%, 인도는 1.4%에 불과하다. 인건비만 놓고 볼 때 타이는 한국에 비해 10배나 경쟁력이 높다. 둘째, 자국의 우수 인력에게 영리병원 설립 기회를 부여하여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고급 시설과 고가의 첨단 장비를 구비하여 양질의 서비스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다. 미국·영국 등 의료 선진국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인력과 연수를 마친 의사들을 중심으로 의료진이 구성되어 있고, 진료의 범위나 성적에서 미국 유수병원과 차이가 없음을 자랑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주요 시술에 대해서 국내 3차병원의 비급여 비용을 포함한 건강보험 진료비 수준이 타이, 인도 등의 영리병원이 미국 환자들에게 제시하는 진료비와 비슷하다. 그러나 인도, 타이의 경우 항공료, 호텔 숙박비 등 부대비용이 포함된 가격이고, 이들 나라의 영리병원 병실의 대부분이 1인실임을 고려해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국내 병원에서 이들 병원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국내 병원의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 틀림없다. 더군다나, 영리병원 허용으로 의료비가 2∼3배 이상 급등할 것을 고려하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산업에 ‘첨단’산업이라는 이미지가 중첩돼 있어서 그렇지, 실상 동남아 개도국에서 의료관광이 성공한 비결은 1970∼8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저임금 구조와 동일하다. ‘의료 관광’이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는 ‘신발 산업’의 부활도 가능하다는 주장과 동일한 것이다. 국내에 타이 등 개도국의 의료관광 성공사례가 소개되면서 영리병원 허용론이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타이와 같은 동남아 국가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것 없다는 ‘단순 논리’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주장은 의료관광 시장에 대한 ‘무지’ 때문이거나, ‘영리병원 허용’론을 적극적으로 유포하기 위해 사실의 일부만을 ‘악용’한 탓이다.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국내에 의료소외계층이 급증하게 되면 이들이 치료를 이유로 동남아나 중국으로 떠날 가능성마저 있다. 책임 있는 여당의 정책위의장이 쉽게 ‘현혹’당할 논리가 결코 아니다. 똑같은 주장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박형근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