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허위’ 유포한 한승수 총리도 징계하지?”(김진국)

“‘허위’ 유포한 한승수 총리도 징계하지?”
[기고] ‘영어 몰입’에 빠진 방통심의위의 황당한 결정
2008-07-18 오후 2:25:48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16일, 전체회의에서 문화방송(MBC) 에 대해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을 들어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그 첫 번째 근거로 내세운 것이 “영어 인터뷰에 대한 오역으로 사실을 오인하게 한 점”을 꼽았다.
  
   맞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영어 몰입에 빠진 방통심의위원의 한가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을 전부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MBC 이 방영한 ‘사실’이 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황당무계한 이번 결정에 참여한 방통심의위원의 이름들은 시민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권력이 주는 단맛은 달콤 쌉쌀하긴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는 법이다. 아무리 길어봐야 4년 남짓이다.
  
  지난 4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 재수입이 결정되고 국민들의 저항이 촛불로 타오르자 17대 국회 마지막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는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라고 했다. 유난히 법치를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지켜야 할 법과 절차는 깡그리 무시하는 정부의 총리다운 발언이었다. 총리의 이 발언은 방송을 포함한 많은 언론매체에 그대로 공개되었다.
  
  CJD 와 vCJD는 전염병 예방법(제7조 3 제1항, 제4항, 동법 시행규칙 3조 2의 규정)에 따라 국가가 지정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 지정 전염병이다. 법에 규정된 ‘사실’조차 무시한 총리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당시 방송사들은 총리의 발언이 사실과는 다르고, CJD와 vCJD가 국가에서 지정한 지정 전염병임을 알리는 자막을 넣거나 정정 보도를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들이 사실을 오인하게 만들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각 방송사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 CJD와 vCJD는 전염병예방법에 따른 지정 전염병이다. 한승수 총리는 국회에서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이 발언은 많은 언론 매체에 그대로 공개되었다. ⓒ프레시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dairy cows’를 ‘젖소’로 번역하지 않고 주저앉는 소가 나타나는 화면과 함께 “이런 소”라고 번역함으로써 광우병 의심소를 의미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 축산업계가 젖소뿐 아니라 이런 소, 저런 소, 병든 소, 주저앉는 소들을 검사도 없이 무차별 도축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금지된 동물성 사료까지 아직 사용하고 있다는데 있다. 국민들이 아직 촛불을 끄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이 퍼뜨린 괴담이 아니라 미국의 정부 기관 회계 감사원의 보고서(General Accounting office January 2002 Report to Congressional requesters)에 상세히 담겨져 있다. 프리온 가설로 노벨상을 받은 프루지너 박사는 미국의 축산 정책에 대해 “섬뜩하다(appalling)”는 표현까지 쓰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런 소”를 “젖소”로 바꾼다 해서 사실관계가 어떻게 달라진다는 건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또 방통심의위원회는 아레사 빈슨의 사망 경위와 관련된 의 방송 내용 중에서 인간광우병이 “의심된다(suspect)”라고 해석해야 할 것을 인간광우병에 “걸렸다”라고 오역하여 사실을 오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영어에 몰입되어 있는 관변학자들다운 신선한 발상이긴 하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들의 면면에서 임상의학에 최소한의 식견이 있거나 경험을 가졌을 법한 이력은 보이지 않는다. 또 이번 결정과정에 임상 의사나 의학자들에게 최소한의 자문을 구한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임상적으로 “병에 걸린 것”과 학술적으로 “병명을 의심하는 것”은 별개의 논점인데 방통심의위원회는 이를 뒤섞어서 판단하고 있다. 방통심의위원회의 지적대로라면 아레사 빈슨이 병에 걸린 사실 자체를 의심해야하는 꼴이 된다.
  
   아레사 빈슨이 확진되지 않은 어떤 병에 걸렸던 것(affected by a disease)은 분명한 사실이고, 병에 걸렸던 사실 자체가 “의심”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레사 빈슨은 vCJD가 “의심”되는 병에 “걸려”에 사망한 것이다. 에 대해 굳이 문제를 삼자면 문장 중에 “의심되는 병”을 생략했다는 점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vCJD에 “의심”되는 병에 “걸려” 사망한 것과 vCJD에 “걸려” 사망한 것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차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도 미국 축산업자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 “의심되는 병”이란 말을 생략했다고 해서 사실관계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CJD나 vCJD는 뇌 조직 검사 외에는 확진 방법이 달리 없다. 이 때문에 환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뇌 조직 검사가 불가능하므로 죽어서야 비로소 확진이 되는 병이다.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CJD나 vCJD가 “의심”되는 환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죽은 뒤라도 확진이 쉬운 것이 아니다. 병원성 프리온 단백질의 감염력 때문에 부검 시설은 특단의 시설과 특단의 폐기 시설까지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의인성(Iatrogenic) CJD의 위험성이 있으니 선뜻 부검을 하겠다 나서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도 잘 없을 것이다. 결국 vCJD가 의심되는 환자들 중에서 사후 부검을 통해 확진까지 되는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vCJD의 발병률은 “심각하게 과소평가(seriously underdiagnosed at present)” 되어 있다는 학계의 견해(British Journal of Psychiatry(1991) vol 158 pp 457-470)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vCJD가 “의심되는 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표현과 vCJD에 “걸려” 사망했다는 표현은 임상적으로는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청자와 시민은 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있는데, 시민들의 혈세로 녹을 먹는 방통심의위원들은 영어 몇 마디를 트집 잡아 을 향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결정을 내렸다. 그 분들은 시민들이 MBC에 사과받기 위해 몰려간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김진국/대구·경북인의협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