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제주도의 실패…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제주도의 실패…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기고] 영리병원 ‘반대 39.9% vs 찬성 38.2%’의 의미  

  2008-07-31 오후 5:25:52    

  

  
  최근 고조되던 제주 영리병원 논란이 7월 28일 여론조사 결과 발표로 일단락되었다. 반대 39.9%, 찬성 38.2%로 찬성 입장이 과반을 넘지 못했기에 제주도 당국이 영리병원 허용 문제를 접기로 한 탓이다. 여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입법예고 전 단계에서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추진이 적어도 올해에는 종결된 것이다. 그러나 제주 영리병원 논란이 정리된 이 시점에서 몇 가지 짚어볼 사항이 있다. 왜냐면 의료 민영화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우선, 제주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 민영화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보면, 촛불 민심에 밀려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 건은 현 정부 임기 내 추진이 어렵게 되어 버렸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문제도 그렇다. 핵심은 건강보험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상품 개발을 위해 건강보험 공단이 보유한 개인 치료정보를 개인별 혹은 인구학적·사회경제학적 특성별로 민간보험회사와 공유하는 문제인데 이것도 의료민영화 논란의 핵심사안인지라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마지막 남은 카드가 영리병원 허용 문제이다. 이마저도 전국적 수준에서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내국인 영리병원 도입 의지를 강력하게 밝히고 나서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반면, 의료 민영화 반대 입장에서 보면 제주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영리병원 전국화의 물꼬를 트는 시발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영리병원의 전국화는 시장에 의료 민영화가 가능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고, 그 간의 촛불의 성과가 무력화되면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당연 지정제 완화까지도 가시권 안에 들어올 만큼 강력한 정책적·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사안이었다. 제주 영리병원 문제는 결국 의료민영화를 둘러싼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지니는 전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제주도 당국이 왜 스스로 의료민영화의 선봉장을 자청했는가의 문제이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제주도 당국은 경제부처의 지도(?)를 받아 ‘의료’를 제주의 미래 전략 산업으로 설정한 바 있다. 태국과 같은 동남아 국가도 의료 관광으로 외화벌이를 잘 하는데, 너희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외국 오렌지 수입으로 귤 산업이 이전만 못하고, 외국 관광 활성화로 관광 수입을 통한 경기도 많이 위축된 상황에서 제주의 천연자원과 결합된 의료 관광 활성화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것이라 판단된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한차례 홍역을 치르면서 외국인 영리병원으로 그 범위가 제한되었다. 의료 관광의 국제 교역 조건상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한국과 제주도에 외국자본은 투자를 기피하는 상황이었고, 앞으로도 외국자본의 투자유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2003년 7월 1일부터 발효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 영리병원 유치실적과 추진 계획이 전무한 것이 실증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2010년 차기 지방선거를 내다보고 있는 도지사로서는 내국인 영리병원 유치실적에 승부수를 걸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의료 민영화 논란이 한창인 촛불 정국 속에서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의 선봉장을 자임하게 된 꼴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원인을 되짚어 보면 제주도지사와 그 핵심 참모들이 의료민영화의 실체와 국민적 저항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정직하게 인식하지 못한 탓이 제일 크다고 생각된다.
  
▲제주도 영리의료법인 도입은 도민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계속 이런 의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프레시안  

  세 번째는 제주도 당국이 왜 입법예고 전 단계에서 무리한 여론조사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가의 문제이다. 의료 민영화 우려가 증폭되고 있던 촛불 정국 속에서 그 어떤 중앙부처도 ‘의료 민영화’ 핵심전략의 주무부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건강보험 민영화는 없다’는 입장을 공식 천명한 이후 영리병원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공식적 발표는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제주도의 경우 의료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추진하는 영리병원에 대해서 도민의 다수가 찬성한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발언을 통해 간접적 허용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중앙부처의 이러한 면피용 입장으로 인해 공이 제주도 당국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7월 28일 발표된 영리병원 여론조사 발표 이전에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상반된 결과가 나온 상황 탓에 제주도 당국은 새로운 객관적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도 당국은 7월 28일 여론조사 결과에서 과반의 찬성이 나오지 않으면 2008년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을 포기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그 이후 보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제주도내 전 공무원이 동원돼 20세 이상 성인 10만 명(제주도민 55만명)을 직접 만나서 영리병원 도입의 필요성을 교육·홍보하였고, 영리병원 허용 지지 광고가 도내 일간지를 도배하다시피 하였으며, 도내 일제 반상회까지 개최하면서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여론조사 기간 동안에도 도청 공무원들에 의한 찬성 유도 전화와 방문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총력 동원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 찬성률은 과반이 안 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보다 낮았다. 액면으로 보면 1.7% 차이지만, 내용은 제주도 당국의 참패였다.
  
  네 번째는 제주 영리병원 논란의 결과가 갖는 파급력에 대한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의 의미는 제주도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의 의료 민영화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히 높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조건이 성숙되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2010년 선거를 앞둔 2009년에 다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제주와 같이 경제 전망이 어둡고 의료 인프라가 취약하며, 의료 관광의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역에서 조차 의료민영화 추진론자들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에 비추어볼 때 타 지역에서도 영리병원 허용론을 당분간은 쉽게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영리병원 이야기를 다시 꺼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민간의료보험활성화를 위한 제반의 조치도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 뻔하다. 제주도민들의 현명한 판단을 통해 민의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제주 영리병원 논란으로 의료 민영화 문제가 일단락될 것이냐에 관한 문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결코 아니’라고 판단한다. 의료 민영화 추진의 핵심에는 건강보험 40조 원을 탐내는 민간보험자본과 미국식 의료제도를 모델로 ‘의료’를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제부처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한 번의 여론조사 결과에 휘둘릴 주체들이 아니다. 이미 전국에 깔아 논 제주를 포함한 경제특구를 비롯하여 곧이어 5조 원이 투자될 첨단의료복합단지들이 의료 민영화에 생사를 걸고 달려들 것이고, 건강보험제도의 규제 틀 속에서 경쟁에 지쳐하는 수많은 ‘민간’ 병의원들이 현 제도에 심각한 염증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민영화의 핵심주체들과 이들이 키워낸 수많은 행동대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국면이다. 앞으로 이들의 역할(?)이 자못 기대된다.
  
  제주 영리병원 논란은 여론조사라는 형식을 통해 의료 민영화로 비롯될 의료비 폭등을 염려한 제주 도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추진 주체들의 태도에는 일체의 흔들림이 없다. 의료 민영화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급급한 현 정부가 계속해서 의료민영화에 집착한다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대립과 갈등이 지속될 것이다.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박형근/제주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