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 쿠데타’ 언론자유 벼랑끝 섰다
KBS 이사회, 정연주 해임제청안 통과
기자협회 등 “법 짓밟는 행위” 반발
한겨레 김동훈 기자 권귀순 기자
한국방송 피디협회, 기자협회 등 직능단체 회원들이 정연주 사장 해임안을 다루기 위해 이사회가 열리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3층 회의실을 들어가려다 경찰들이 들어와 밀어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국방송> 이사회가 8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들여 11~12일께 정 사장을 해임한 뒤 곧바로 후임 사장을 인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기자협회와 피디협회, 경영협회 등 직능단체장과 일부 노조 지부장 등 지도부 11명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오는 11일 가칭 ‘공영방송 케이비에스 사수 사원행동’을 결성하는 사원총회를 열고 해임 제청안 통과 무효와 새 사장 임명저지 투쟁에 주력하기로 했다.
정 사장도 보도자료를 내어 “이사회가 해임 제청권이 없는데다 이사회 일시를 미리 사장에게 알리지 않는 등 절차상의 잘못도 있어 이사회 의결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사장 변호인단은 이날 저녁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냈다. 또 법적 권한이 없는 이사회 요청으로 경찰을 한국방송에 투입한 데 대해서도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날 경찰은 경영진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1990년 5월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방송사 안에 경찰을 들여보냈다.
[현장]KBS 이사회,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통과…직원-경찰 충돌도
학계와 언론계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가 법을 무시한 노골적인 방송 장악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성토했다. ‘방송 장악·네티즌 탄압 저지 범국민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법에도 없는 사장 해임 권한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 나라의 법을 짓밟는 행위”라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도 성명에서 “케이비에스 이사회의 정 사장 해임 제청은 ‘방송 쿠데타’”라며 “국제기자연맹(IFJ), 국내 현업 언론인단체 등과 연대해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경호 한국기자협회장은 “현 정권이 언론을 강권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문화방송 등도 알아서 기게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5공 때 보도지침 폭로사건의 주역인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현 정권의 뿌리가 과거 민정당과 닿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언론자유가 벼랑 끝에 몰렸다”고 우려했다. 김영호 언론개혁 시민연대 상임대표는 “이명박 정권에게는 법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현 정권은 정 사장 축출에 이어 신문법 개정을 통해 한국방송 2채널 분리와 문화방송 민영화를 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진만 한국방송학회장(강원대 교수)은 “방송법에서 대통령에게 해임권을 주지 않은 것은 방송독립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역사는 반복되고 여야는 또 바뀔 텐데, 한나라당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고 비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사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방송 내부 구성원들이나 시민단체는 20~30년을 지켜 왔던 가치를 못 지켰다는 치욕감을 느끼고 있다”며 “한국방송이 그간 다져 왔던 신뢰를 잃어버리면 정권의 대국민 설득 작업도 그만큼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김동훈 권귀순 기자 cano@hani.co.kr
기사등록 : 2008-08-08 오후 07:44:56 기사수정 : 2008-08-08 오후 11:4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