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주선…현행법 정면 위반
KBS 관련 ‘7인 비밀회동’ 충격
KBS사장 제청 8일 앞두고 만남
유재천 이사장이 후보들 불러내
동석 김은구씨 회동 며칠뒤 신청서
한겨레 김동훈 기자
» 왼쪽부터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최시중 방통위원장, 유재천 KBS이사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 김은구 전 이사, 최동호 전 부사장, 박흥수 전 이사
지난 17일의 모임에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한국방송 이사장,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김은구 전 한국방송 이사, 최동호 전 한국방송 부사장, 박흥수 전 한국방송 이사 등 7명이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석자들은 이날 모임의 성격에 대해 “(사장 선임을 위한) 대책회의가 아니라 저녁식사 하면서 방송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방송 이사회의 새 사장 임명제청일(25일)을 불과 8일 앞두고 만난데다 김 전 이사, 최 전 부사장, 박 전 이사 등은 당시 한국방송 사장 후보로 거명되던 사람이고 이 가운데 김 전 이사는 이후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압축한 5명의 사장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들에 대한 사전 면접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우선 최 위원장의 이런 행동은 현행 방송통신법 규정과 취지를 정면으로 어겼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방통위 설치법 1조에는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고, 제9조는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은 정치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이다.
또 방통위원장은 한국방송 사장 선임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다. 방통위는 한국방송 이사 선임권만 있고, 한국방송 사장은 한국방송 이사회의 임명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 비서실장·대변인과 함께 한국방송 사장 후보들을 만나 인사에 관여한 것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월권을 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언론계에서는 최 위원장이 이날 비밀회동을 주선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그가 이명박 정부 언론정책의 ‘컨트롤 타워’임이 노출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최 위원장은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나 김금수 당시 한국방송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당시 사장의 거취를 논의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한국피디연합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케이비에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추천해야 할 케이비에스 사장 선임을 사실상 청와대가 진두지휘하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최시중씨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케이비에스(KBS) 사장 인사권자처럼 행사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재천 이사장의 경우도 한국방송 사장 후보들을 그 자리에 불러낸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정권의 언론장악에 시녀 노릇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미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 과정에서 경찰력을 동원하는 등 무리수를 둔 데 이어, 이번에는 사장 선임권을 갖고 있는 이사회의 의장임에도 청와대 고위층과 방송통신위원장 앞에 사장 후보들을 불러세움으로써 사실상 한국방송 이사회를 거수기로 만드는 데 앞장선 셈이다.
언론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유재천 이사장이) 이사회 전체회의에서 논의해야 할 사장 추천을 정권의 주구들과 거래한 것은 방송법이 정한 한국방송 이사회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에도 성명에서 “청와대 관계자와 만난 유재천 이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부에서 한국방송 이사를 지낸 한 인사는 “2000년과 2003년 사이 이사장을 지낸 지명관씨는 이 기간 정부 쪽 사람들과 만난 적이 없었고 김금수 전 이사장도 정부 쪽에서 제안이 있었으나 이런 형태의 모임을 가진 적은 없었다”며 유 이사장 참석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청와대가 한국방송 사장 선임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과 측근들은 제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