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건강보험 흑자 필수의료보장에 써야 / 김정범

[왜냐면] 건강보험 흑자 필수의료보장에 써야 / 김정범
                                       기사등록 : 2008-10-15 오후 07:25:38
  

병원에서 수가 인상 호기?
정부에서 국고보조 줄일 호기?
흑자는 보험료 올리고
필수보장 줄인 결과
보장성 후퇴한 것부터 되돌리라

올해 건강보험의 재정흑자 규모가 2조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국고부담이던 차상위계층의 의료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떠넘긴데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나 1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예상하던 정부의 우려에 비춰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올해 심각한 경기침체, 고유가, 실업 등으로 국민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웬만한 병은 참고 병원에 덜 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만이 흑자의 원인은 아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 보조는 묶어둔 채, 단순히 건강보험재정의 적자만 우려한 나머지 식대 급여의 본인부담금을 확대하고 6살 미만 어린이 입원료 중 10%를 본인이 부담하게 하는 등 건강보험의 보장을 축소했다. 여기에 보험료는 4.77%에서 5.07%로 대폭 인상한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의 존재목적은 ‘재정의 수지균형’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보장’에 있다. 수익을 목표로 하는 민간회사가 아닌 다음에야 사상최대가 될 건강보험 재정흑자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곧 있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잘못된 추계에 기초하여 정부가 애초 국민에게 약속한 보장성 확대 정책의 후퇴를 가져온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되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즉 식대급여를 원상회복해야 할 것이며 6살 미만 아동 입원료의 10% 본인부담 장벽부터 다시 제거해야 한다. 의료남용의 우려가 있다면 이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의료이용을 합리화하도록 유도해야지 의료보장의 범위를 축소해 서민들의 필수적 의료마저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의료공급자 쪽에서는 이번에야말로 대폭적인 수가인상의 기회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어려워진 서민들이 가계부담으로 꼭 필요한 의료이용마저 줄여서 발생된 흑자란 현실을 고려할 때, 의료수가의 과도한 인상은 서민들의 의료이용을 더욱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의료기관의 처지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건강보험의 국고보조를 더 줄이자는 발상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것 역시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반쪽짜리 보험이란 비아냥을 듣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선진국 수준으로까지 넓히려면 건강보험의 재정규모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부의 건강보험보조금을 ‘획기적’으로 높여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대폭 확대하고 명실상부한 선진국형 국민건강보험으로 만들어갈 기회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일차 의료기관의 주치의등록제 도입과 함께 병원급 의료기관에는 포괄수가제 같은 재정절감형 의료수가 지급체계를 도입해 의료기관의 진료행태와 국민들의 의료이용을 동시에 합리화하는 방안을 같이 가져 간다면 무상의료에 준하는 획기적 의료보장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