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고개드는 FTA 재협상론…자칫 ‘최악의 상황’ 맞을 수도

  
  한미FTA, ‘복합적 소용돌이’ 속으로…  
  고개드는 FTA 재협상론…자칫 ‘최악의 상황’ 맞을 수도  

  2008-11-10 오후 12:24:34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기류가 복잡하게 충돌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12일로 예정된 공청회 이후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상정을 강행할 뜻을 밝히는 등 강경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반면, 야당은 이를 ‘실력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 역시 “재협상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미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해도 무조건 거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바는 없다.
  
  결국 선비준론-재협상불가피론-선도적 재협상론 등이 혼재된 가운데 모두들 ‘오바마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 10일 오전 국회에서 ‘졸속비준’반대 모임을 꾸린 야당 의원들ⓒ연합  

  송광호 “재협상 전략 마련하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이 지금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있는데 12일 공청회를 하고 상정할 것 같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 상정해서 바로 처리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의 집권기인 노무현 정부 시절 반미 자주외교를 부르짖던 그분들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한미 FTA를 체결했겠느냐”며 “민주당이 정부 발목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결사 저지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혜민 자유무역협정 교섭 대표도 이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재협상에 대해서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협상을 할 경우에 우리 국내에 한미 FTA에 대한 지지를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재협상 불가-선 비준론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 당선자가 자동차와 관련해서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이야기 한 바 있기 때문에 재협상을 이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여권 수뇌부의 이같은 방침이 그대로 관철될지는 미지수. 이미 여권 내에서도 ‘무조건 선비준론’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적지않고 이로 인해 국회 본회의 비준은 시점을 정하지 않고 연기된 상황이다.
  
  게다가 충청 출신의 송광호 최고위원은 이날 공식적으로 ‘재협상 준비’를 언급했다. 그는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관심은 (한미 FTA) 자동차 부분 추가협상”이라며 “우리도 농업, 서비스 분야에서 강하게 지원책을 마련해서 자동차 부분 (재협상)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송 최고위원은 “이번에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면서 확실한 농촌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쌀값 폭락,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사태와 함께) 삼중고가 겹쳐 농민들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희태 대표는 송 최고위원의 발언 직후 “선 농촌 대책 후 비준은 우리의 원칙”이라며 “농촌 대책을 정부에서 단편적으로 발표 했지만 농민들이 인식하지 못한다. 농민들이 인식하도록 한꺼번에 종합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추가적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경남 출신의 박 대표는 “수도권 규제 완화도 종합적 패키지로 지방 대책은 이렇다고 하는 것을 못해서 지방의 반발이 커진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졸속비준 반대 모임 결성한 야권
  
  야당은 이날 선(先)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졸속 비준’ 반대모임을 결성하는 등 결속력을 높였다.
  
  민주당 유선호, 천정배, 최인기, 김재윤, 자유선진당 류근찬, 김낙성, 민주노동당 강기갑, 권영길, 무소속 유성엽 의원 등은 이날 국회에서 ‘한미FTA 졸속비준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가칭)’ 준비모임을 가졌다.
  
  준비모임은 유선호, 최인기, 김낙성, 강기갑 의원을 공동대표로 선임키로 했으며 야당 의원은 물론 농촌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 등을 상대로도 참가를 유도해 13일 경 정식으로 비상시국회의를 결성하기로 했다.
  
  이날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17대 때 워밍업이었다고 보면 이제 본경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이것 만큼은 확실히 의지를 모으고 국민의 힘을 조직해서 민생과 국익, 민주주의에 반하는 한미 FTA의 졸속체결을 저지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의원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해 “서민들이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고통을 맞고 있고 앞으로 더 극심한 고통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금융위기 자체만 보더라도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훨씬 더 커진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강기갑 의원도 “과반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이 비상한 속도로 FTA 비준을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다”며 “경제이익을 위해 FTA 체결했다고 하지만 그사이 엄청난 변화가 온데다가 미국 정권이 바뀌었다”며 재협상 필요성을 지적했다.
  
  강 의원은 ‘선비준을 통한 오바마 압박론’에 대해선 “새 정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미국 압박용으로 국내 비준을 몰아붙인 다는 것은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며 “미국이 어떤 나라냐. 우리 압박에 미국이 굴할 것 같나”고 말하기도 했다.
  
  복잡한 상황…’잘못된 협상’ 인정 못하는건 정부와 친노진영 일치
  
  한미 FTA 문제와 관련해 두드러지는 모습은 정부여당이 내부 틈새가 벌어지고 야권은 기세를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이 쉽사리 한미 FTA 포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미FTA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가 여권 내 신중론자들의 의견도 ‘미국의 동태를 살펴보고 거기 맞춰 움직이자’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외통위 상정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라기보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절차적 압박’ 카드로 해석되는 측면도 다분하다.
  
  야권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민주노동당 정도가 자신의 기조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에서는 17대 국회 때부터 한미 FTA를 반대해온 천정배 의원,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부채감이 없는 추미애 등 일부 의원이 재협상론자에 가깝다.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가 살 길’이라는 청와대 논리에 동의했던 적잖은 민주당 의원들은 현 국면에서 ‘비준 연기론자’일 뿐이다.
  
  자칭 ‘뉴레프트’를 주장하고 나서는 안희정 최고위원 등 민주당 내 친노파들은 아예 한미 FTA에 대해선 언급을 꺼리고 있다. 기존의 한미 FTA협상이 잘못됐다는 논리를 받아들일수 없는 것.
  
  이는 통상교섭본부 등 당국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한미 FTA 재협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이번에 투자자국가소송제, 개방에 관한 래칫 조항(역진 금지) 등 독소조항 폐기를 내걸고 선제적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이 문제는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금융자본주의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오바마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며 성공적 재협상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과 한나라당, 민주당 일부는 ‘독소조항’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까닭에 재협상 국면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정부와 전문가들은 자동차의 경우 우리가 개방을 거의 다 해놓았기 때문에 더 개방할 것도 없고, 현 미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는 자체적 경쟁력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고, 한미 FTA 반대론자들도 이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일부 보수적 전문가들은 ‘실제로 손해볼 일도 크게 없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여 자동차 문제는 양보해서 빨리 마무리 짓는게 낫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오바마 당선도 전인 지난 3일 “한국은 한·미 FTA와 관련해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 있다 (…) 한국 자동차 업계는 현재의 미 자동차 시장 관세 제도하에서도 성공적으로 경쟁해 왔다 그런 만큼 설사 관세 철폐 시한을 연장하더라도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국 내 경쟁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양국 간 교역량이 연간 200억 달러 선까지 늘어난다는 점이다”는 재미 변호사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이같은 경우 독소조항은 그대로 존치하고 자동차 부분만 양보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윤태곤,박세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