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녹색’?…100년 파티의 끝에서 우리는”
[오바마 시대 vs 이명박 시대]<7>
기사입력 2008-11-27 오후 3:15:34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 당선인의 등장은 미국의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불확실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던 부시 대통령에 맞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연 오바마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건강과대안’과 공동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보건의료, 여성, 환경 등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오바마 개혁의 비전과 한계를 짚어본다. 더 나아가 이런 오바마 개혁이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사회정책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볼 것이다.
‘건강과대안’(대표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은 시민과 함께 건강과 관련된 온갖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지난 10월 18일 출범한 싱크탱크이다. 이들은 보건의료를 넘어 환경, 노동 안전, 사회적 약자의 건강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관련 기사 : “건강하고 싶다”…’촛불’ 열망 모은 ‘건강과대안’ 출범)
남반구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로 지금 여름이다. 그런데 며칠 전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와 빅토리아 주에 눈이 내렸다. 해변에서 수영을 즐겨야 할 사람들이 한여름에 눈싸움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상이변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의 아버지 나라 케냐는 기후 변화로 극심한 가뭄과 사막화로 고통 받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도네시아는 해수면 상승으로 2년 사이 24개의 섬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내건 기치는 ‘변화(Change)’와 ‘화합(Union)’이다. 여기서 ‘화합’의 메시지는 미국 사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독불장군처럼 ‘홀로’ 달렸던 부시와 달리 ‘다자주의’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당선 연설문에서 “기후 변화와 같은 문제들은 흑인도, 백인도, 라틴계도, 아시안계도 아닌 우리 모두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어서 지난 18일, 오바마는 ‘세계 기후 정상회의’에서 부시가 박차고 나온 교토의정서 체제에 복귀할 것임을 시사했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그동안 미국이 거부해온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 체제에 복귀할 것을 확실히 했다. 그의 ‘녹색’은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과 어떻게 다른가? ⓒ뉴시스=로이터
오바마의 ‘새로운 에너지’ 비전
지난 4월, 부시 행정부는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2025년 이후부터 줄이기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오바마는 이번 선거에서 202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수준으로 안정화시키며,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80%를 줄일 것을 제시했다. 참고로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도 대비 14.4%로 증가했다(2006년).
지금까지의 미국과는 다른 태도이다. 그의 공약 ‘미국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에는 미국 사회를 저탄소 사회로 전환함과 동시에 일자리와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비전이 담겨있다. 우선 석유 회사의 과도 수익에 대한 세금 부과를 통해 저소득층 가정에 단기 에너지 환급금을 제공한다. 일명 ‘로빈후드세’인데, 부시 정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정책이다.
향후 10년 동안 미국이 현재 서남아시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수입하는 원유량을 10% 이상 감축하고, 2012년까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력의 10%, 2025년까지 25%를 생산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10년간 1500억 달러(약 222조)를 에너지 효율과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한다. 오바마는 미국의 에너지 인프라를 효율적이고 깨끗한 에너지 생산 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자 한다.
오마바의 ‘녹색’과 이명박의 ‘녹색’
오바마의 혁신적인 에너지 정책에 정부는 미국의 ‘교토’ 체제 복귀가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오바마의 ‘녹색’과 이명박의 ‘녹색’은 같은 색일까?
오바마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석유와 몇몇 대기업에 의존한 거대한 에너지 산업을 저탄소 에너지로 재편하면서 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녹색 일자리 기업(Green Jobs Corp)’을 창업해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 부문 교육을 통해 인력을 육성하고, 저소득층 가구를 대상으로 한 에너지 효율 프로젝트(Westernization)에 투자한다. 에너지 복지, 환경, 일자리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녹색 일자리에 대한 변변한 정책 보고서 하나 없이 일본의 ‘후쿠다 비전’을 부랴부랴 따와 재생 가능 에너지 투자를 늘리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믿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르다.
미국 상원은 내년 1월, 기후 변화 대책과 관련한 주요 법안을 마련할 것임을 밝혔다. 이 법안에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 할당과 거래 제도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상업화하며, 차세대 바이오 연료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보급한다는 내용이 담긴다. 오바마는 미 상원에서 ‘환경·공공사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환경 법률에 96% 지지율을 보였다(힐러리 클린턴 90%, 존 매케인 26%). 환경 분야에 오랜 활동과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 존 포데스타 가 창립한 미국진보센터(CAP : 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속 가능성에 바탕을 둔 에너지 체제”와 “모두를 위한 진보경제”를 핵심 정책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 성장’은 ‘핵 발전 확대’이다. 원자력 설비 비중을 2007년 26%에서 2030년까지 41%로 늘리고 발전 비중도 59%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부의 계획을 실행하려면 핵 발전소를 추가로 9~13기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2030년까지 국내 핵발전소는 40여 기에 육박하게 된다. 지금의 두 배에 가까운 핵 발전소가 들어서고, 우리의 주 에너지원은 전력으로 전환된다. 원자력 발전을 대폭 늘리고, 재생 가능 에너지도 늘이고 결국 총 에너지 생산량과 소비량은 지금보다 훨씬 더 증가한다. ‘저탄소’가 아니라 ‘고탄소’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 ‘녹색 성장’ 하겠다면서 경기 부양책으로 건설 경기를 일으킨다. 한때 경부운하를 꿈꿨던 정부가 아닌가. 그린벨트를 풀고,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아파트 건설을 확대한다. ‘녹색’과 어울리지 않는 ‘잿빛’의 ‘불도저 성장’이다.
오마바 시대, 원자력이 날개를 단다?
오바마도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서 ‘원자력’의 역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를 두고 한국의 핵 산업계는 마치 원군이라도 얻은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유카산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점과 상업용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추가 원전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민주당 당론은 원전 건설 반대이며, 그의 기후 변화 정책 입안에 자문을 했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앨 고어 역시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오마바 집권기 미국에서 핵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 같지는 않다. 오바마의 에너지 분야 싱크탱크인 CAP가 9월에 발간한 ‘그린 리커버리’ 보고서는 건물 에너지 효율, 대중교통, 전력IT(스마트 전력망), 태양광, 바이오연료, 풍력 등 6대 분야가 저탄소 경제의 핵심임을 제시했다. 원자력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경제 위기는 오히려 저탄소 경제 전환의 기회
미국의 경제 위기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걸림돌이기 보다는 녹색 경제 정책으로 전환할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을 구제하면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세계 자동차 산업의 빅3는 단기이윤 확보를 위해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역행하는 SUV(스포츠형 다목적 차량)에 생산에 집착해왔다. 그러는 사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에게 판매율 1위를 넘겨줬다.
오바마는 자동차 회사에게 연비 향상과 하이브리드카 생산을 주문할 것이다. 매년 자동차 효율 기준을 4%씩 향상시키고, 취임 1년 내 백악관 모든 차량을, 2012년까지 연방정부 조달 차량의 절반을 하이브리드카로 바꾼다. 차세대 바이오 연료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같은 식량 작물 대신 나무와 같은 것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미국이 지금은 독일과 일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친환경 자동차 기술과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이 뒤지지만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와 시장을 제공하면 판도는 달라질 수 있다.
한편, 미국이 정말 ‘새로운 에너지 시대’를 열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전통적인 에너지 기업들의 견제와 산업계가 반발할 가능성도 높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마음 편하게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겠냐”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오바마는 주사위를 던졌다.
12월 1일부터 폴란드 포츠난에서는 14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2008년과 2009년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는 교토의정서에 따른 의무감축 기간이 끝나는 2012년 이후를 준비하는 회의이다. ‘발리 로드맵’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협상에 참가해 2009년까지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협약을 마련해야한다. 제 14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오바마는 “이번 회의에는 부시 행정부가 참석하지만 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청청 에너지에 투자하는 어떤 기업도 워싱턴의 동지가 될 것이며, 기후 변화에 대해 행동하는 어떤 국가도 미국이라는 동맹을 얻을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오바마의 발언에 유엔환경계획(UNEP)과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 사무국은 고무된 분위기이다.
달라지는 국제 기후변화협상 무대, 우리의 대응은?
2009년 1월 20일, 오마바 행정부가 출범하면 에너지 정책에 혁명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다. 우선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 복귀하고 의회 비준을 요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의무 감축을 회피해온 미국 뒤에 숨어서 눈치만 보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자발적 감축’을 주장하면서 2009년 감축 목표를 설정할 계획이지만 미국의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만들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청정개발 및 기후에 관한 아태지역파트너십’이 어떻게 작동할지도 의문이다. 공화당의 매케인 상원의원 조차도 “아태지역 파트너십은 교토의정서에 맞서기 위한 그럴듯한 홍보 전술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한바 있다.
앞으로 우리가 ‘저탄소 사회’를 향한 마라톤을 해야 한다면 지금부터 신발끈을 동여매고,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핵 에너지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저탄소 사회’에 맞게 재조직해야 한다. 석유시대 100년의 파티가 끝나가는 지금,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지금, ‘녹색인 척’만 해서는 이 위기를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이유진 건강과대안 회원·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