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내 남편, 내 아들 두 번 죽였다”
[현장] 유족 동의 없이 부검…시신 확인도 유족 1명으로 제한
기사입력 2009-01-21 오후 2:22:10
삼삼오오 앉은 유족은 그저 울기만 했다. 하루아침에 생떼 같은 아들을, 시아버지를 잃은 것도 기가 찬데, 5구의 시신 가운데 대체 어느 시신이 내 가족의 것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어느 시신은 살이 찢어져 뼈가 다 드러났고 또 어느 시신은 장기가 파손된 채 드러났다. 또 누군가는 손목이 부러져 꺾여 있었다. 이승에서의 삶도 하루하루가 참담했는데, 저승으로 갈 때마저 이렇게 처참하게 떠나 보내야하나 싶어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도저히 내 아버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어. 30년을 같이 살았어도 저 상태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우리 아버지일 리가 없어. 아무리 봐도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에 한 번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연락을 받은 적도 동의해준 적도 없는데 누군가에 의해 이미 시신에 칼이 닿았다는 것을 알고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시신을 확인하고 싶다는 유족들을 막아선 경찰 앞에 한 번 솟아오른 분노는, “시신 한 구당 유족 대표 1명만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더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어제 아침에 얘길 듣고는 현장에도 가보고 여기 저기 찾아다녔지만 그 어디에서도 우리 아저씨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새벽 3시가 돼서야 연락을 받았는데, 제가 절대 부검하지 말라고 두 번 죽이긴 싫다고 그랬어요. 그대로 있는 줄 알고 왔더니 벌써 만신창이를 만들어놨더라고요. 두 번 죽였어요….”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영숙 씨는 울부짖었다. 권 씨는 “남편이 분명히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고 직후 신원 확인이 됐을 텐데도 정부는 유족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부검을 했고, 뒤늦게 병원을 찾아갔지만 처음엔 시신조차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6명이 숨진 현장이었으니 다친 이도 셀 수가 없는데 경찰은 그 정확한 인원도 후송된 병원도 밝히지 않았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부상자 면담을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유족과 대책위가 정부와 경찰의 고의적인 사건 은폐·축소 의혹을 제기하는 까닭이다.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대책위원회’는 참사 하루 뒤인 21일 오전 숨진 철거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사상 유례없이 유족 동의조차 없이 부검을 감행하는 등 이명박 정권은 철거민을 학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건의 원인을 은폐하고 조속하게 사건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체 무엇이 두려워 모든 것을 숨기나?”
▲ 시신을 확인하고 싶다는 유족들을 막아선 경찰 앞에 한 번 솟아오른 분노는, “시신 한 구당 유족 대표 1명만 들어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더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프레시안
대책위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놓고 문제를 제기했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사였고, 정부와 경찰의 수습 과정도 유례를 찾기 힘들게 벌어졌다. 대책위는 “그 어느 것도 투명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도, 12시간 만에 부검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시신을 보낸 것도, 부검 이후 순천향병원에 시신을 안치한 것도 경찰은 전혀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는 대책위가 사고 발생 이후 24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두 번째 살인”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대책위 이종회 집행위원장은 “부인이 시신을 확인하겠다는데 주민등록번호 확인이 안 된다고 못 들어간다고 하고, 가족들이 여럿 있는데 한 명만 대표로 들어간다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하며 수없는 의문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 본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도 “마지막 가는 길을 보는 가족에게도 대표가 있느냐”며 “지금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
대책위의 임태훈 인권법률팀장도 “공권력이 신뢰를 받으려면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신뢰가 없으니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유족을 무시하고 있다는 불신이 팽배했다.
“사망 전 경찰의 폭력 숨기려 ‘쥐도 새도 모르게’ 부검했나?”
특히 경찰이 일방적으로 부검을 실시한 것이 ‘진실 은폐, 축소 의혹’의 가장 큰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부검의 목적은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 원인을 밝히는 것 뿐 아니라 사망 전에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인데 혹 무엇인가를 감추고자 경찰이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변사체가 생기면 가장 먼저 신원을 확인해 유족을 찾아 시신을 보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유족들이 의사를 선임해 시신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직접 사망의 원인 외의 다른 폭력 행위 등의 증거를 찾아달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내가 확인했을 때는 이미 부검으로 두개골이 절단되고 상당 부위를 칼로 찢고 봉합한 뒤라 그런 흔적을 정확히 가려내기 어려웠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공동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이왕 부검을 했으면 부검 결과라도 하루 빨리 유족과 국민들 앞에 정확히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부상자의 신원과 정확한 규모도 후송된 병원도 경찰은 즉시 대책위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대책위 관계자 및 변호인과의 면담도 경찰은 막았다.
천주교인원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긴급히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 부상자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지만 대부분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변호인 접견마저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상조사, 정부에 맡길 수 없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책위와 별도로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사태를 파악하고 나선 것은 이런 배경에 있다. 대책위는 이날 “정부와 공권력의 책임이 분명한 사건에서 살인을 자행한 세력에게 진상조사를 맡길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책위는 오후 1시부터 긴급 회의를 갖고 진상조사단의 추후 활동 및 대응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6명이 목숨을 잃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 군사독재 정권에서도 찾기 힘들었다는 정부의 대응 방식이 다시 한 번 유족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