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 책임자 처벌” 촛불시위 전국 확산
강병한·김지환·임아영기자
서울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때와 같이 연대기구를 구성할 움직임을 보여 제2의 촛불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7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용산 국민대책위’가 21일 용산 철거민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자 처벌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시민·사회단체들은 21일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국민대책위)를 구성했다. 용산국민대책위에는 진보연대·민주노총·민주노동당 등 70여개 정당·시민·사회·노동단체와 인터넷카페 등이 참여했다. 대책위 측은 “광우병국민대책회의보다 더 광범위한 범국민적인 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날 오후 7시 참사현장인 서울 한강로 건물 앞에서 추모대회를 열었다. 추모제를 마친 1200여명의 시위대는 ‘진압 책임자 처벌’ ‘철저한 진상규명’ ‘뉴타운 재개발 전면 중단’ 등을 요구하며 밤 늦게까지 시위를 벌였다. 철거현장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1970년대 철거민의 아픔을 그린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작가 조세희씨도 헌화했다. 대책위가 인터넷에 설치한 온라인 분향소에도 네티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용산국민대책위는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부검을 실시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영숙씨(48)는 “21일 새벽 3시에야 이미 부검돼 만신창이가 된 시신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족과 함께 시신을 확인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89년 변사체로 발견된 조선대 이철규씨 사건 때도 유족의 동의를 거쳐 입회하에 부검을 했다. 전두환 정권 때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강경진압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는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부산지역 29개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은 부산경찰청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인천지역 30여개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막가파식 개발정책과 경찰폭력이 철거민들을 숨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명도 집회를 열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용산 참사가 ‘제2의 촛불시위’로 번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날 시위에는 지난해 촛불시위를 첫 점화한 인터넷카페 회원들이 다시 깃발을 들고 참여했다. 촛불시위대에 음료와 음식을 무료로 제공해 유명해진 ‘촛불다방’도 참사현장에 차려졌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시민과 네티즌들 사이에 재점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은 “정부의 국정운영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촛불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시민사회가 지친 부분이 있고,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냉소적인 시각이 시민들에게 퍼져 있다”며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