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푸제온’ 공급선회, 리펀딩제가 원인?
환자단체 1년간 전면전···항의시위·인권위 진정·강제실시까지
공식 시판 않고 ‘동정적 지원’ 우회공급
한국로슈가 에이즈약 ‘푸제온’을 국내에 공급한다. 공식시판 대신 동정적 프로그램을 통해 무상 공급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현재 상한가로는 제품을 판매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로 풀이되지만, 당장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임에 분명하다.
‘푸제온’은 지난 4년여 동안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약가에 불만을 품고 제품 공급을 거부해온 한국로슈 측 표현대로라면 여전히 가격협의가 안돼 시판할 수 없다는 드문 사례였기 때문이다.
한국로슈는 이 기간 동안 수차에 걸쳐 약가인상을 요구했고, 마지노선을 병당 3만원으로 정해 배수진을 쳤다.
한국로슈 사장은 정부나 시민단체·환자단체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도 3만원이하에서는 시판이 절대 불가하다고 버텼다.
시련도 많았다.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한국로슈 본사와 본사가 입주한 빌딩 앞에서 갖가지 항의시위와 항의행동에 나섰다.
국가인권위에 인권을 유린한 사례로 진정접수가 됐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급기야 강제실사 재정신청이 특허청에 접수되기도 했다.
복지부 측의 직·간접적인 압박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로슈는 요지부동이었다.
전세계 10여개국의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로슈 규탄 공동행동을 해도 한국법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로슈는 예고 없이 복지부에 무상공급 방침을 25일 전달했다. 종전의 방침을 급선회 한 것이어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복지부와 ‘딜’이 있었나?
복지부 관계자는 전적으로 부인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회사 측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는 거다.
◇강제실시가 부담이 됐다?
일정부분 수긍할 만한 얘기다. 하지만 ‘푸제온’ 제조가 쉽지 않아 강제실시를 특허청이 수용한다고 해도 실제 국내생산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로슈 사장도 이런 점 때문에 시민단체와의 면담자리에서 “만들 수는 있느냐”고 말해, 당시 면담 참가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었다.
◇의약품 ‘리펀딩제도’?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이다. 복지부 전재희 장관은 25일 국회 보건복지위 대정부질의에서 ‘리펀딩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제도는 전 장관의 답변에 앞서 이미 기정사실로 회자됐던 터다. 한국로슈도 이 제도를 활용해 이른바 ‘글로벌 프라이스’를 지킬 수 있다면 시판을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로슈의 갑작스런 태도변화에 대해 “리펀딩제 참여를 위한 사전정지 작업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로슈 측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복지부에 전달한 공문에서 보험상한금액 협의가 안되면서 제품시판이 지연돼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줄이고 적절한 치료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배경설명이 알려진 전부다.
향후 리펀딩제도 도입과 한국로슈의 대응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이유다.
한편 에이즈환자단체 관계자는 한국로슈의 결정에 대해 씁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환자들이 푸제온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다행”이라면서도 “로슈가 공식적인 시판채널을 통하지 않고 동정적 프로그램으로 우회 공급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데일리팜 최은택 기자 (etchoi@dreamdr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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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입력 시간 : 2009-02-27 06:3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