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 올 하반기부터 은행 장악 가능
경제법안 처리합의 의미
산업자본 은행지분 한도 ‘10%’로 늘어
‘삼성 지배구조 합법화’는 4월 처리 합의
여야가 마침내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정을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은행법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금융지주회사법은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재벌이 은행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은행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 보유할 수 있는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을 현행 4%에서 10%로 대폭 늘리는 것이다. 국내 은행들의 주식 소유가 분산돼 있음을 고려하면 산업자본은 10% 지분 소유만으로도 대주주가 될 수 있다. 은행법 개정안에는 사모투자전문회사(PEF)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현행법으로는 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사모펀드에 산업자본이 10% 지분만 참여할 수 있으나 개정안은 이를 30%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이와 함께 전체 재벌 계열사의 사모펀드 출자한도를 현행 30%에서 50%로 높였다. 이렇게 재벌이 직간접으로 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길이 넓어져 ‘재벌은행’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은행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며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경제 살리기 법안’으로 주장해 왔으나, 한편으로는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과 함께 국내 금융체계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산업자본이 사실상 은행 지배를 하지 못한다라는 전제조건을 달거나, 대주주가 은행 임원 선임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규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보험·증권지주회사가 제조업 등 비금융 자회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증권지주회사의 경우 지주회사 외에 증권업을 하는 자회사도 비금융회사를 직접 지배할 수 있는 반면, 보험지주회사는 보험계약자 보호를 위해 지주회사가 직접 지배하는 것만 허용된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삼성이 생명을 보험지주회사로 만들어 그 아래 전자를 둘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경제력 집중 현상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의 근거 법률인 정책금융공사법과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여야 모두 시기 조절과 내용 보완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전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산은의 투자은행부문을 분리해 민영화하는 데 따른 위험부담이 커진데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국책은행으로서 산은 기능이 강화되어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무위 간사인 신학용 의원은 산업법 개정안과 관련해 “지금 같은 금융위기에 산은 민영화를 위한 구조조정 등을 하다 보면 중소기업 지원이 소홀해진다는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법은 정책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와 관련해도, 여야간에 별로 충돌이 없는 편이다.
김수헌 이유주현 기자 minerva@hani.co.kr
사라지는 ‘출총제’…재벌규율 진공상태 우려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는 재벌그룹 계열사의 경우 순자산의 40% 이상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사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제도다. 출총제는 전두환 정권 때인 1986년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도입된 뒤 지난 23년 동안 재벌규제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현재 출총제는 자산이 10조원 이상인 재벌그룹 계열사 중에서 다시 자산이 2조원 이상인 대기업에 한해 적용될 정도로 완화됐다. 지난해 4월 현재 출총제 적용 대상은 10개 재벌그룹 소속 31개 기업뿐이다.
출총제가 규제로서의 실효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음에도 존폐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팽팽했던 것은 대표적 재벌규제로서의 상징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규제완화와 친기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출총제 폐지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출총제는 그동안 정권교체기와 경제위기 때마다 존폐 논쟁을 포함한 심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투자활성화를 이유로 폐지됐다. 하지만 30대 재벌의 출자총액이 97년 이후 불과 4년 동안 3배나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다시 부활됐다.
출총제 투자저해론을 펴온 경영계와 여당은 출총제 폐지로 대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제거됨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개혁·진보성향의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재벌에 대한 시장 감시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출총제만 없애면 ‘규율의 진공상태’가 빚어질 것이라며, 사후적 시장규율장치의 강화를 주장한다. 사후적 시장규율장치들로는 3배 손해배상제와 포괄적 집단소송제, 이중(다중)대표소송제 등이 꼽힌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기사등록 : 2009-03-02 오후 10:44:45 기사수정 : 2009-03-02 오후 10:5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