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이명박 정부 금기어 ‘신빈곤층’

이명박 정부 금기어 ‘신빈곤층’
박용근기자 yk21@kyunghyang.com

ㆍ“현정권에 부정적” 판단… ‘위기가정’으로 대체
ㆍ민노 “용어 자체보다 정책에나 전념하라” 비판

3일 일선 지자체가 내놓은 각종 자료에 눈에 띄는 용어의 변화가 생겼다.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신 등장한 용어는 ‘위기가정’이다.

전북도는 이날 ‘신빈곤층’으로 써 오던 관련 자료 용어를 모두 ‘위기가정’으로 바꿔 사용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신빈곤층’이란 용어는 공식용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주노동당은 2일 민생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봉고차 할머니’ ‘목도리 할머니’ 등 빈곤층 찾기 쇼를 할 때 현장에서 직접 사용까지 했던 용어를 며칠 만에 금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신빈곤층이라는 용어가 현 정권이 만들어낸 빈곤층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제 집권 1년이 지난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노당은 “용어 사용에 얽매이지 말고 그 용어 자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정책에나 전념하라”고 꼬집었다.

지자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북도는 공식적으론 “정부의 ‘신빈곤층’ 용어 자제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료 한쪽 면에 ‘청와대 신빈곤층 용어 사용 금지령’이란 제하의 인터넷판 뉴스를 복사해 첨부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지만 정황으로 볼 때 앞으로 모든 공문서에 신빈곤층 대신 위기가정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이명박 대통령도 신빈곤층 복지사각 제도를 없애라는 말을 사용했다”면서 “정부 스스로 이 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대 김모 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문서작업시 이전 정권에서 주로 사용했던 단어들은 모두 금지어라는 점에 놀랐다”면서 “예컨대 ‘소외계층’ ‘혁신’ ‘참여’ 등의 단어를 보고서에 쓰면 혼쭐난다”고 말했다.

<박용근기자 yk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