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최악 의료체계’ 고치려 하고
MB는 그게 좋다고 기어이 베끼려 하고
[주장] 영리병원과 의료민영화, 그 진실과 거짓말
09.03.13 11:44 ㅣ최종 업데이트 09.03.13 11:44 송관욱 (news)
기획재정부(장관 윤증현)가 지난 9일 서비스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영리의료법인의 설립 허용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재정 부는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면 의료수지 적자를 개선하고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해 의 료비가 인상되고 의료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이와 관련, 송관욱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 지부 대표 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 지난 2008년 7월 23일 저녁 ‘언론장악 저지·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제로 제77차 촛불집회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언론노조, 보건의료노조, 공공운수연맹 노동자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의료민영화 반대
의료민영화를 향한 정부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벌써 몇 번째인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의료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공론화를 시도하다가 여론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물러섰고, 현 정부 들어서도 영리병원 허용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시도하다가 촛불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또 제주특별자치도의 영리병원 설립 시도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반대의견이 많아 철회되기도 하였다.
그 뒤 한동안 잠잠하던 의료민영화 움직임이 이번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선봉으로 대통령과 보수언론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다시 전 방위적 공세로 돌아서고 있다. 그토록 반대했는데도 거듭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그들이 표면에 내세우는 이유만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영리병원 설립되면 일자리 창출되고 의료서비스 좋아진다?
정부가 의료민영화정책의 필요성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국내 의료산업이 낡은 규제에 묶여 서비스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이로 인해 해마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수백억 원에 이르므로, 병원 영리법인을 허용하고 자본 투자를 유도하여 의료서비스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면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장차 국민들이 영리병원 간의 경쟁을 통해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한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의료기관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건강보험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기존의 국민건강보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니 서민들은 현재와 같이 의료를 이용하면 되고, 다만 돈을 더 내더라도 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주장은 의료영리법인을 허용하면 자본투자가 일어나 병원의 대형화가 진행되고 일자리도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되며, 궁극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은 떨어지고 서비스는 좋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말대로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석연치 않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주장은 밑지고 장사하겠다는 얘기만큼이나 허황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10%에 불과하다. 이렇듯 민간 중심의 의료 인프라를 갖춘 우리의 보건의료체계가 그나마 상업화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안전장치 때문이다. 바로 ▲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제 ▲ 전 의료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을 금지하는 의료기관의 비영리원칙이 그것이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정책은 위의 세 가지 정책에 정확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영리법인의 의료기관설립을 허용하고,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여 진료비를 자율화하며, 이러한 고급의료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도록 민영의료보험을 활성화하자는 정책이다. 이 세 가지 정책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독자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영리병원의 미덕은 이윤 창출… 의료 이용 양극화 속도 빨라질 것
▲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의료 단체들이 ‘영리병원 설립’,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 보건단체의료연합
영리병원
영리병원이란 말 그대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세운 병원을 말한다.
여기에 투자되는 자본도 마찬가지로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이윤을 내기 위한 원칙은 일반기업이나 병원이나 마찬가지다. 비용을 줄이고 마진을 늘이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주야간 맞교대로 공장이 돌아가는 이유는 이윤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기계를 세워두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고가의 의료장비를 구입했으면 가능한 한 검사를 많이 해야 한다. 영리병원에서는 그것이 미덕이다.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병실 고급화는 기본이다. 담당간호사도 배치해야 할 것이며, 주치의 얼굴 보기 힘들면 고급서비스가 아니니 의사 1인당 환자수도 줄여야 할 것이다. 기왕이면 미국 현지병원과 합작하여 복잡한 수속 없이 원정출산을 연계하는 것도 좋겠다. 당연히 고가의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의료기관 당연지정제 하에서는 모든 의료기관은 보험공단에서 정해준 급여기준에 따라 진료해야 하며, 의료수가도 정해진 대로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계약해지가 아니라 업무정지를 당하거나 병원개설 허가가 취소된다.
고급서비스 제공하라고 영리병원 허용해놓고 영리추구를 방해할 수 있을까? 필연적으로 의료기관 당연지정제는 폐지되거나 유명무실해질 것이며, 건강보험 수가체계는 무너지고 자율화된 의료비는 경쟁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결국 경쟁적으로 비싸진 의료비용을 개인이 감당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또 별도의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되고 국민건강보험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게 된다. 동시에 대형 민영의료보험사와 대형 영리병원을 중심으로 한 중소형 병원들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고, 모든 의료행위는 네트워크의 정점에 위치한 민영의료보험사의 통제를 받게 된다. 네트워크에 소속되지 못한 병원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며, 결국 의료이용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기본 권리로 보느냐, 돈벌이 수단으로 보느냐의 차이
지나친 비약인가. 그러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이러한 결말이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현실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우선 개혁과제로 지목한 미국 의료체계의 현 상황이다.
미국은 국민의료비 지출이 세계 1위이면서도 전 국민의 15%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를 가진 나라다.
같은 자본주의 경제권에 속하면서도 서구 유럽 나라들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러한 현상은, 경제제도와는 무관하게 정치적 판단에 따라 보건의료체계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즉 보건의료에 대한 접근권을 국민들의 기본 권리로 생각하는 나라와, 이윤창출의 블루 오션으로 활용하려는 나라의 차이이기도 하다.
정부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 설립을 거듭 추진하려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농업과 교육부문에서 보여준 현 정부의 정책노선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거대 보험자본이나 다국적 민영보험사의 의료시장 진출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 있다면 바로 영리법인 금지조항과 국민건강보험의 수가통제일 것이다.
이미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는 진행 중이며, 이를 완성하기 위해 영리병원허용과 의료수가 자율화가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정부의 옹색한 변명과 거듭된 무리수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며 그 끝은 어떤 세상으로 이어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