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허용, 약인가 독인가
“영리병원 허용한다고, 원정출산 줄겠냐”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 2009년03월13일 21시38분
영리법인병원(영리병원) 허용을 비롯해 정부가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해 내달리고 있다. 정부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대국민 의료서비스 질도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른바 ‘미래 성장동력’인 의료서비스산업 활성화로 일자리 창출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정부의 영리법인병원(영리병원) 허용에 대해 보건의료단체들은 필연적으로 의료비 폭등을 불러올 것이라며 재차 추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정국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엔 ‘의료민영화’를 둘러싼 정부와 반대진영 간에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영리병원 허용, 오히려 서비스 질 악화시킨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으로 구성된 ‘건강권 보장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희망연대’(건강연대)는 12일 오후 정부 주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공개토론회’에 앞서 토론회 장소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기자회견를 개최했다.
단체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영리병원 허용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해외 연구결과 등을 들어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강연대는 “미국에서 324개 병원을 조사한 연구는 영리병원 의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19% 높았고, 메디케어(노인대상 공보험)를 비교한 연구도 영리병원 의료비가 16.5% 높았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영리병원은 돈을 벌기 위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줄여 서비스 질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정부 논리를 반박했다.
병원의 인건비 비율은 제조업 분야의 10배 수준인 50%에 달하고 의료인력의 규모는 의료서비스 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영리병원 도입에 따라 병원 간 경쟁이 격화되면 인건비를 줄일 것이고 이는 의료서비스 질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공공병원 비율 OECD 1/10, “건강보험 못 버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촛불정국을 거치며 거센 논란이 일었던 건강보험당연지정제(모든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제도)는 유지 입장을 밝히 있다. 하지만 단체들은 한국의 공공의료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아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건강보험제도 역시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OECD 국가 중 영리병원이 허용된 국가들의 공공병원의 비율은 60~95% 수준이다. 미국만 해도 민간비영리병원(60%)과 공공병원(20%)을 합해 88%(2001년 기준)고, 캐나다는 아예 영리병원이 없고 공공병원 비율이 98%에 이른다. 독일도 공공병원(51%)과 민간비영리병원(35%) 비율이 86%에 달한다. 때문에 이들 나라에선 영리병원이 있어도 공공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공공병원 비율은 OECD 평균의 1/10 수준인 7%에 불과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복지부가 당장은 당연지정제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의료비가 상승해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당연지정제는 없어질 수밖에 없고 건겅보험제도는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6천만 달러 적자? “영리병원 허용한다고 국내서 ‘원정출산’하나”
또 기획재정부는 해외진료비 등 의료서비스 수지 적자를 영리병원 허용의 또 다른 이유로 들고 있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국제 경쟁력이 강화되고, 이를 통해 의료서비스 수지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재정부는 연간 6천만 달러가 해외진료비로 빠져나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서비스 적자액 규모 6천만 달러(2007년 기준 665억 원)는 해외서비스 전체 지출액 19조 원을 놓고 보면 차지하는 비율이 0.3%로 미미한 수준이다.
건강연대는 “해외의료서비스 대부분은 원정출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 국내에 영리병원을 허용한다 해서 원정출산이 줄어들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또 “원정출산을 해결할 수도 없고 해외서비스 지출액의 0.3%에 불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보건의료제도의 근본을 뒤바꾸려 하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경제위기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지금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정책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건강보험 보장성과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통해 건강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