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규제완화만 챙기고 일자리 줄였다
10대기업 매출증가에도 1천여명 감축
‘규제풀면 고용확대’ 약속 팽개쳐
황보연 기자 김회승 기자 곽정수 기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계가 ‘10% 이상 일자리 늘리기’를 여러 차례 공언하며 각종 친기업(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얻어냈지만, 지난해 재계를 대표하는 10대 기업의 전체 일자리는 1000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한겨레>가 금융업을 제외한 자산기준 10대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했더니, 전체 직원 수는 모두 26만3328명으로 2007년 말 26만4466명에 견줘 1138명이 줄었다. 자산총액 1위인 삼성전자가 직원을 전년보다 259명 줄인 것을 비롯해, 한국전력·포스코·케이티·에스케이텔레콤·현대중공업·한국가스공사 등이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2000명 가까이 고용을 줄였다. 케이티는 전년보다 직원을 무려 1850명이나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 수가 증가한 곳은 현대자동차·삼성중공업·에스케이에너지 등 3곳이었다. 이 중 에스케이에너지의 경우 지난해 인천정유를 합병한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고용 증가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10대 기업의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290조2920억원으로 2007년 말에 견줘 23.9%(55조9822억원)나 증가했다. 덩치는 키웠지만, 외려 전체 고용은 줄인 것이다.
10대 그룹 계열사 전체를 들여다봐도 고용 성적표는 저조했다. ‘재벌닷컴’이 이날 공기업을 제외한 10대 그룹 상장계열사 76곳의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직원 수는 모두 44만5487명으로 2007년 말 43만7634명에 견줘 7853명(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에 평균 1.7% 증가한 반면 하반기엔 증가율이 0.1%에 그쳐,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뒤 고용 증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별로 삼성이 1.1% 줄었고 엘지·롯데·한화 등은 5% 안팎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일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집단 가운데 지난해와 비교할 수 있는 39개 그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체 임직원 수가 지난해 말 현재 106만명으로 한 해 전(102만6000명)에 견줘 3.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들 그룹의 지난해 자산과 매출액이 각각 20.8%, 24.2% 늘어난 것에 비춰 보면, 재벌 그룹의 ‘고용 없는 성장’을 확인해주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와 주요 대기업들은 지난해 ‘일자리 10% 늘리기’를 공언했고, 청와대에서 두 차례나 ‘민관 합동회의’를 열어 실적을 점검하기도 했다. 정부는 재벌들의 이런 공언을 믿고 규제 완화와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친기업 정책을 폈다.
허민영 경성대 연구교수(경제학부)는 “대기업들이 말로는 고용을 늘린다고 하면서 정작 투자에는 나서지 않고 사내 유보금만 늘려왔다”며 “투자·고용 확대를 빌미로 끊임없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재벌들의 이중적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쪽은 “30대 그룹의 지난해 신규 채용만 보면 그 전 해보다 30% 이상 늘었다”며 “전세계 유수 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하는 와중에 국내 주요 기업의 고용 총량이 미미하나마 플러스 성장을 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김회승 기자,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