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플루 치료제 품귀…”정부 뭐하나”
인구 대비 고작 5% 비축…미ㆍ일 등 선진국은 20-30% 비축
기사입력 2009-04-29 오후 4:26:56
미국 뉴욕에서 수백 명이 돼지인플루엔자 증상을 보이면서, 멕시코에서 시작된 이 전염병이 전 세계적인 대유행(pandemic)이 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위스의 제약회사 로슈가 판매를 독점하는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의 품귀 현상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타미플루는 돼지인플루엔자 증상이 나타난 시점에서 48시간 이내에 복용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힘들다. 이번에 멕시코에서 돼지인플루엔자 사망자가 많은 것도 환자의 다수가 제 때 타미플루를 복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일단 돼지인플루엔자에 감염되면 타미플루를 얼마나 빨리 복용할 수 있는지가 1차적으로 생사와 방역의 갈림길인 셈이다.
타미플루, 품귀 현상 ‘발등의 불’
보건의료단체연합,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보공유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돼지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를 독점 판매하는 로슈가 생산 시설을 최대한 가동한다 하더라도 2015년이 돼야 전 세계 인구의 20%에 투여할 수 있는 약제를 생산할 수 있다”며 “만약 돼지인플루엔자가 전 세계 전염병이 된다면 그 피해는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는 “고작 250만 명분(전 국민 대비 5%)을 비축해놓고 있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며 “보건의료 전문가, 시민·사회단체는 수년째 타미플루의 비축량을 최소한 20% 정도로 늘릴 것을 요구해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요구를 전혀 실행하지 않아 왔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류인플루엔자, 돼지인플루엔자 등이 유행할 경우를 대비해 각국에 전체 인구 20%의 타미플루를 비축하라고 권고해왔다. 한국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이런 권고를 계속 무시해왔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이미 국민의 20~30% 수준의 타미플루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의료 산업화’를 되뇌던 이명박 정부는 그 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며 “국민들이 돼지인플루엔자를 불안해 할 때도 ‘병원 주식회사’를 만들면 된다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냐”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미 지금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자 인플루엔자 백신, 치료제 등을 생산할 공공 제약회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늦기 전에 타미플루 ‘강제 실시’ 선언해야
한편, 치료제 품귀 현상이 점쳐지면서 각국 정부가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보유한 로슈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 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의약품 특허권의 ‘강제 실시(compulsory licensing)’는 세계무역기구(WTO)도 보장하고 있는 각국 정부의 권리이다.
한국 정부가 타미플루의 특허권 강제 실시를 결정하면, 인플루엔자 유행이 걱정되는 이런 상황에서 로슈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타미플루를 자국 제약회사에서 생산할 수 있다. 전문가 다수는 이미 국내 제약회사가 타미플루 생산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로슈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국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런 강제 실시를 검토를 외면하고 있다. 현행 특허법을 보면,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일 때만 정부가 나서 강제 실시를 할 수 있다. 미국, 인도네시아, 캐나다, 타이완 등의 전염병 대유행을 우려해 타미플루 등의 항바이러스제의 강제 실시를 검토·시행하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한국 정부는 인플루엔자가 이미 퍼진 후에야 뒤늦게 강제 실시를 하겠다는 말이냐”며 “로슈의 주장을 염두에 두면 원료 물질을 확보하더라도 타미플루 생산에는 6~8개월이 걸린다”고 비판했다. 인도, 캐나다, 타이완 등의 제약회사는 이미 타미플루의 복제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