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빵점’, 민주 ’20점’…’민심’은 분노했다
“反MB 정서 폭발할 수도”…야당도 ‘옐로카드’
기사입력 2009-04-30 오전 12:20:14
5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0점’, 민주당은 ’20점’을 받았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간판을 달고 뛴 후보가 당선 된 곳이 5곳 가운데 단 1곳에 불과하다는 점은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드러낸 결과다. 4.29 재보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 대한 ‘민심의 경고’라고 할만하다.
민심이 되살린 ‘정권 심판’
5대0. 민심의 화살은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을 강타했다. 재보선 풍향계나 다름없는 인천 부평을에서 여당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나라당은 경기 시흥시장 선거마저 패함으로써 치명상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수도권의 압도적인 지지로 탄생한 이명박 정부가 집권 1년여 만에 수도권 선거에서 패퇴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부평을은 지난해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켰던 곳이기도 하다.
울산 북구의 민심도 ‘정권 심판’을 과녁으로 삼았다. 이곳 역시 지난해 총선에선 한나라당 윤두환 후보가 당선됐던 지역. 사실상 ‘여-야 맞대결’, ‘보-혁 대결’로 구도가 압축된 만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선거 패배로 받은 충격은 깊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부평과 울산에 경제전문가를 공천하는 등 선거 컨셉을 ‘경제살리기’로 집중했음에도 통하지 않았다. ‘경제’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고, 그런 대통령에게 힘을 싣자고 총선을 통해 과반의석을 한나라당에게 부여한 지 1년 만에 현 정부의 ‘경제살리기’ 구호가 설득력을 잃었다는 반증이다.
이상득 의원의 영향권인 경주에서 이명박계의 핵심인 정종복 후보가 탈락함으로써 ‘형님 정치’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 후보는 지난해 총선에 이어 친박계 후보에게 연거푸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명실상부한 ‘권력 2인자’로 군림한 이상득 의원에 대한 심판으로 여겨지고 있다.
▲ ⓒ청와대
결 국 재보선 민심은 집권여당에게 참패를 안김으로써 ‘정권 심판’이라는 전통적인 재보선의 의미를 극명하게 되살려 냈다. 여야 각 당이 집안싸움에 매몰돼 선거를 기형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그에 교란되지 않고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에게 명징한 경고장을 던진 셈이다.
청와대는 짐짓 선거 결과에 초연한 표정이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5대0′의 성적표를 받아든 데 따른 내상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반감이 확인됨으로써 어떤 식으로건 ‘국정쇄신’이 불가피해졌다.
민주당도 ‘옐로카드’
‘정권 심판’이 야당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은 민심이 민주당에게도 ‘옐로카드’를 꺼냈다는 증거다. 한나라당의 전패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이 고작 1승을 챙기는 데 그쳤다는 건 재보선의 특징인 ‘야당 프리미엄’도 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민 주당은 인천 부평을과 시흥시장 선거 승리에 위안을 삼고 있으나, 전주에서 내분 진화에 실패, 무소속으로 출마한 자당의 대선후보에게 일격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더욱이 실질적인 호남 승부처였던 완산갑마저 정동영 전 장관의 영향권으로 접수됨으로써 민주당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이게 됐다.
제3후보 관리에 실패한 점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되돌아봐야 할 평가지점으로 지목된다.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 단일화가 이뤄진 지역은 울산 북구가 유일했다. 그조차 민주당 후보가 중도 사퇴함으로써 성사된 단일화다.
민 주당은 그 외의 부평, 전주 덕진, 시흥 선거에선 경쟁력 있는 제3후보들을 우군화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특히 부평에는 FTA 국내대책본부장을 공천함으로써 진보진영과의 단일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등 ‘야권 맏형’으로서 오만함을 노출하기도 했다.
‘반MB’ 본격 결집…5월 정국 주목
정 부여당에 대한 심판, 민주당에 대한 경고로 요약되는 이번 재보선 민의에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징후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고전한 까닭을 경쟁력 있는 군소야당과 무소속 후보의 출현으로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반MB층이 본격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한 것으로 읽었다. 동시에 그런 표심이 야당을 통하지 않은 ‘직접 심판’의 형태를 보임으로써 민주당 역시 불신의 대상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귀영 KSOI 수석 전문위원은 “이번 재보선은 MB정권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원내 1, 2당이 구축한 보수독점체제에 대한 심판”이라며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재보선을 앞두고 무당파층이 급증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 지난달 2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 따르면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파층이 44.3%에 달했다. 조사기관마다 편차는 있지만 무당파층이 여야를 압도하는 제1당이라는 아이러니는 마찬가지였다.
과거 재보선보다 이번 재보선 투표율이 높았다는 건 이들 무당파층이 투표장으로 나왔다는 걸 의미한다. 무당파층이 ‘반MB층’으로 기울면서 야당을 경유하지 않은 ‘직접 심판’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한 위원은 “재보선은 기본적으로 기본 지지층 대결이지만, 이번 재보선을 통해 반MB층이 결집되고 있는 양상은 확연해졌다”고 분석했다.
결국 재보선을 통해 ‘반MB-직접 심판’ 민심이 드러난 만큼, 사회적 저항 전선이 구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귀영 위원은 “용산 참사 100일, 촛불 1년 등의 계기와 맞물려 반MB 정서가 사회적으로 폭발 수도 있다”고 했다.
/임경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