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원 칼럼]누구를 위한 영리병원인가(김광원 2009.05.20)
누구를 위한 영리병원인가
김광원 (언론인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이명박정부 출범부터 국민의 주변을 맴돌았던 대표적 망령이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다.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느냐”던 이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을 정도였다. 그 망령은 결국 ‘4대강 종합정비 사업’이 되어 되살아났다. 이 사업은 예정보다 앞당겨지고 향후 4년간에 걸쳐 대운하 사업과 같은 규모의 14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죽은 것으로 알았던 의료민영화가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너울을 쓰고 영리의료법인의 도입논란으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것도 의료민영화에 부정적이던 보건복지가족부(복지부)가 나섰다. 선진화 방안에 영리의료법인(투자개방형) 도입검토를 포함시킨 것이다.
당초 정부는 영리의료법인의 허용과 함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혹은 완화 등 일방적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의 반대와 함께 미국 의료민영화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자 이 방안들을 거두어들이며 논쟁은 가라앉는 추세였다.
문제는 그 추세의 흐름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닮은꼴이라는 점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문제가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활성화 추진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잔불에 기름을 부은 장본인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영리추구하는 의료법인 허용
윤 장관이 지난 2월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정책 중의 하나가 영리의료법인 도입이다. 강만수 장관에 이은 윤증현 장관의 2기 경제팀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게 된 서비스 규제개혁의 핵심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의료민영화와 의료보험 관련 예산을 동시에 대폭 추경예산에 반영함으로써 복지부를 앞세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현재 비영리법인만 운영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함께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법인을 허용, 일자리를 늘리고 의료서비스의 질도 높이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정부 측의 주장에 따르면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될 경우, 경쟁으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그 가격은 저렴해진다. 또한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 공급이 가능해져 부유층의 해외 의료쇼핑으로 인한 수지적자를 개선하고 오히려 해외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
영리의료법인은 일종의 병원주식회사다. 일반 투자자에게서 자본금을 조달해 병원을 운영하고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형태의 병원을 말한다. 이에 반해 현행 의료법은 의사, 국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등)만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의료공공성을 강조한 측면이다. 정부의 논리는 병원주식회사가 국민건강 등 모든 면에서 이득이고 거기에 돈을 더 내더라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겠다는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단체와 의료전문가들은 수익창출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병원주식회사의 폐해를 경고한다. 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영리병원의 의료비는 비영리병원의 평균치를 상회한다. 또 수익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영리병원이 의료비를 낮출 리 없고, 수익극대화를 위한 인력절감으로 일반적 서비스의 질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해외환자 유치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해외의료 수지적자라는 것도 원정脩� 탓이 크고, 그것도 해외서비스 지출총액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큰 우려는 영리병원 허용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건강의료보험체계에 큰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구 선진국들의 공공병원 비율이 60~9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턱없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면 의료비 폭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궁극적 안전장치인 전 의료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무너지는 것은 정해진 순서다.
국민 생명권에 대한 위협
정부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 첨예한 논란대상인 영리의료법인 문제를 ‘검토사항’으로 슬쩍 걸쳐놓고, 우선 다른 방안들을 끼워 넣고 있다. 의료채권 발행과 병원경영지원회사(MSO) 허용 등 의료민영화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계산으로 여겨진다. ‘4대강 살리기’를 떠올리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눈감고 아옹’이다.
결국 정부의 의료민영화는 보험회사가 포함된 거대자본과 대형병원의 네트워크 결합을 의미한다.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이 짝짓기를 하는 ‘미국식’ 의료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의료상황의 참혹함은 이미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에서 증명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그런 의료제도가 ‘나라를 망쳤다’며 개혁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은 생명권이다. 국민의 생명권에 대한 위협은 혁명을 부르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2009-05-20 오후 12:36:5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