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시민들 애도 물결, 경찰 “불법집회” 방해

“얼마나 수모를 당했으면…” 대한문 앞 탄식
시민들 애도 물결
3000여명 분향소 설치, 국화놓고 명복빌어
경찰 “불법집회” 방해…서울광장 출입 봉쇄
한겨레         길윤형 기자 박수진 기자

23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서울에선 시민들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의견을 나눈 뒤 자발적으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추모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23일 밤 서울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시민들 추모 물결 이날 대한문 앞으로 삼삼오오

몰려든 시민들은 오후 4시30분께부터 테이블, 영정사진, 조화 등으로 ‘임시 분향소’를 마련했다. 영정사진 속 노 전 대통령은 밀짚모자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분향소 앞에는 추모객 3000여명이 모여, 갑자기 떠난 노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기도 했다. 분향소 설치가 끝나자 시민들은 네다섯 명씩 국화를 들고 분향소 앞에 나와 절을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환히 웃는 영정 속 노 전 대통령의 얼굴 아래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 박인홍(50)씨는 “뉴스를 보고 놀란 마음에 아내와 함께 나왔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검찰에서 얼마나 수모를 당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분향소 주변에서는 일부 누리꾼들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소추를 바라는 국민운동’ 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분향소를 찾지 못한 시민들도 안타까움을 전했다. 회사원 최장순(30)씨는 “아침에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훌쩍이시더라”라며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 상징하던 도덕성·진보·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들이 무너진 게 아닌가 생각하니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송현수(45·회사원)씨는 “우리가 힘들었을 때 그를 보고 희망이 있다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 노짱, 너무 늦게 왔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시민이 23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들머리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를 그린 그림판을 붙잡은 채 오열하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 경찰, 분향도 방해 경찰은 이날 시민들의 분향소 설치를 막지는 않았으나 분향 진행을 여러 차례 방해해 시민들과 충돌을 빚었다.

대한문 앞에 배치된 경찰 16개 중대 2000여명은 차벽으로 분향소 주변을 둘러싼 채 시민들의 조문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분향소 주변에 설치하려던 천막을 “불법의 소지가 있다”며 압수해 조문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경찰이 분향소 접근을 막자 조문객들은 경찰 차벽 밖에 분향소 두 개를 추가로 설치하고 조문을 진행했다. 흥분한 일부 조문객들이 경찰에게 “차벽을 빼라”고 거세게 항의하는 등 곳곳에서 충돌이 이어졌다. 경찰은 “민주노총, 전교조 등 시위대들이 몰려들 수 있어 출입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추모제를 강제로 해산할 경우 국민적인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규정상 ‘추모제’는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추모 모임을 해산할 법적 근거는 없다. 이날 경찰은 서울에만 92개 중대 1만여명을 배치하고 시민들의 추모 물결을 주시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서울광장·청계광장 등 도심에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주요 광장을 모두 차벽으로 막았다.

길윤형 박수진 송채경화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