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백기투항한 공공의료, 진료 거부당하는 환자

신종 플루 예산 깎은 정부, 뒤늦게 떠넘기기
백기투항한 공공의료, 진료 거부당하는 환자
서울대병원, 거점병원 불참→참여 번복… 복지부, 신종플루 치료제 예산 20억 삭감

09.08.24 21:39 ㅣ최종 업데이트 09.08.24 21:39  권박효원 (10zzung)  

신종플루

  
  


▲ 서울대학병원  
ⓒ 김대홍  서울대학병원

신종플루(신종 인플루엔자) 치료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했던 서울대병원이 24일 오후 결국 계획을 바꿔 거점병원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병원 현장에선 ‘거점병원’을 둘러싸고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병원들은 환자 격리시설이 없어 컨테이너 병동을 설치하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은 이날 저녁 “신종플루 확산 방지 차원에서 시설을 긴급 보수함과 동시에 치료거점병원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애초 병원 쪽은 시설조건 미비를 이유로 사업 참여를 거부했지만, “국립병원이 국가적 재난에는 나 몰라라 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결국 계획을 번복했다.

이번 해프닝을 놓고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환자 진료를 거부한 서울대병원도 문제지만, 신종플루 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정희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 분과장은 “정부가 약품·시설 등의 대책도 없이 병원만 지정해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차라리 서울대병원은 솔직하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노조는 성명을 내고 “즉각 신종플루 환자 치료에 앞장서라”고 병원 쪽에 요구했다.

노조는 “격리병상이 충분치 않은 다른 병원들도 거점병원에 참여하고 있는데 서울대병원에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최은영 공공노조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국가적 재난상태에서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민간병원이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조는 보건당국의 신종플루 관련 대책 부재를 더 큰 문제로 꼬집었다. 거점병원 지정은 결국 정부 역할을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조는 “정부가 시설·장비·인력·약품 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제시해야 실효성 있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선 의료기관들은 갑작스러운 ‘거점’ 지정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환자가 내원하기 전에 시간 약속을 잡고, 접수창구에서 환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분리된 공간에서 진료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병원에 내렸다.

그러나 이는 병원 현실과 괴리가 크다. 서울아산병원·서울삼성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조차 24일에야 급하게 컨테이너 격리병동을 만드는 실정이다. 또 마스크나 치료제가 부족하고 뚜렷한 환자 관리 지침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형병원에서는 원내 감염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의사수가 부족한 개인병원의 경우, 의료진 감염 위험 때문에 환자들을 꺼리고 있다.

  
  
▲ 신종플루 감염 국내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16일, 전병렬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이 복지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당국의 대응책을 발표하고 있다.  
ⓒ 박상규  신종플루

전국 보건소 빠진 치료거점… “백기투항” 비난

신종플루에 대한 정부의 무대응은 올해 예산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24일 진보신당이 밝힌 바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중증신종전염병 격리병상 확충’ 예산을 전년 대비 2억7000만원 삭감했고, ‘신종플루 대비 치료제 지원’ 사업 예산은 전년 대비 46%(20억9000만원)나 깎았다.

최은영 부분회장은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서울대병원이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다, 다른 병원들은 거점으로 지정돼도 보건소로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한 병원에서는 신종플루가 의심되는 환자가 진료를 거부당한 뒤 “일요일에는 보건소가 문을 닫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항의하는 소동도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몇 달 전부터 병원 현장에서는 ‘격리병동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면서 “그런데 정부가 뚜렷한 지시를 안 하다가 갑자기 거점을 지정했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오늘(24일) 오전부터 비상회의를 통해 병동을 설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실장은 또 “이번 거점병원에 전국의 보건소는 모두 빠져 있다”면서 “결국 공공의료시스템이 신종플루에 항복해 백기를 들고 민간에게 공을 넘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진보신당에 따르면, 복지부는 올해 도시지역 보건지소 확충 예산을 지난해보다 45억원 삭감했다. 이에 따라 신규 보건지소도 지난해 14곳에서 올해 7개로 절반이 줄었다. 반면, 의료민영화 논란이 있는 ‘해외환자유치 활성화 지원 예산’은 72.6% 늘어난 9억8000만원 책정하고, ‘첨단의료복합단지조성’ 사업에는 63억4000만원을 신규 편성했다.

  

  
▲ 신종플루 감염 국내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16일, 한 기자가 마스크를 쓴 채 보건복지가족부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