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걸러야할 동네의원, 감기와 구별못해 ‘혼란’
검사장비 없어 한계…일부 거점병원도 격리병상 확보 안돼
정부 속수무책…의협 “소통부족”·보건단체 “공공의료 허술탓”
김양중 기자
» 서울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 정문에 24일 낮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방지를 위해 이날 부터 3일간 임시휴업을 알리는 공고문이 게시되어있다. 그 뒤로 교내 전광판에 신종 인프루엔자 예방 지침이 켜져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의료시스템 곳곳 구멍
서울 노원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ㅇ 원장은 요즘 감기와 같은 급성 호흡기질환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환절기인 탓에 기침, 발열, 콧물 등 감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부쩍 늘었는데, 증상만으로는 ‘신종 인플루엔자 A’(신종 플루)와 단순 감기가 쉽게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확진 검사를 위한 장비를 갖추지도 않았는데, 일부 환자들은 확진 검사를 해달라는 요구까지 한다.
ㅇ 원장은 “신종 플루 환자가 의원을 찾았다는 소문만 나도 환자가 확 줄어들 판인데, 정부는 진료 의사에 대한 아무런 보호 대책 없이 진료를 하도록 지침을 내렸다”며 “신종 플루가 의심되는 고위험군 환자 등에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라는 정부 지침과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경우에 항바이러스제를 처방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사를 꼭 해달라는 환자는 보건소나 큰 병원으로 보내고 있는데, 신종 플루 환자는 물론이고 감기 환자도 진료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신종 플루 감염자가 3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최근 환절기에 접어들며 감기 환자까지 늘어 1차진료를 담당하는 동네 의원 등 의료현장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등 일부 국공립병원마저 ‘격리 독립병상 미완공’ 등의 이유로 치료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하기도 했으며, 일부 치료거점병원은 격리치료 병상이 확보되지 않는 등 올가을 신종 플루의 대유행을 앞두고 의료체계에 빈틈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신종 인플루루엔자 범정부 대책회의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 KTX회의실에서 열려 전국 16개 시도 부교육감들이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대한의사협회는 24일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종 플루 환자를 최일선에서 진료하고 있는 의료인에 대한 안전장비 지급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일부 치료거점병원들은 격리 공간 등 치료 준비가 부족한 상태”라고 밝혔다. 의협 관계자는 “최근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들 가운데 정부가 최근 변경한 신종 플루 치료 지침을 이해하고 있는 비율이 10%도 안 된다”며 “사실상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진료 및 치료 지침을 내려보내거나 치료거점병원을 지정해도 일선 의료기관에서 이를 따르지 않으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신종 플루로 의심되는 환자가 병원을 찾아도 간단한 처치만 한 뒤 다른 병원으로 보내면 진료 거부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과거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 등에서 유행하던 시절에도 서울대병원은 격리병상을 내놓지 않는 등 국공립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게다가 정부는 이번에 치료거점병원으로 지정한 적십자병원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등 공공의료 체계를 오히려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초기에는 몰라도 대유행 단계에서는 민간 병원이나 의원은 신종 플루 감염자 또는 의심 환자를 진료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정부는 대유행하는 전염병 등 국가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이날 오후 간부 회의를 열어 정부의 치료거점병원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 쪽은 보도자료를 내어 “이미 신종 플루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데도 마치 환자 진료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있다”며 “다른 환자에게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국가 격리 독립병상 등이 미완공됐지만 감염을 최대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