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긴급진단> ③정부 대책.문제점
| 기사입력 2009-08-30 07:15 | 최종수정 2009-08-30 11:13
분주한 보건복지가족부(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28일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 등이 신종플루대응 민관협의체 1차회의를 앞두고 회의 내용을 점검하고 있다. 2009.8.28 jeong@yna.co.kr
“국가보건비상시스템 구축해야”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 신종인플루엔자 감염 공포가 확산되면서 정부의 부실한 대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2일 국내 첫 감염환자가 나온 이후 정부는 예방에 초점을 맞춰 다른 나라가 인정할 정도로 환자 발생 억제에 성공했지만, 지역사회 감염으로 방역체계를 공공에서 민간중심으로 전환하면서 곳곳에서 미흡한 준비와 한발 늦은 대책으로 국민의 불신감만 키웠다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부는 관련부처가 참여해 국가재난대책본부에 버금가는 합동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민간의료기관과의 채널 역할을 할 민관협의체를 구성, 다가올 대유행에 대비한 총력태세에 돌입했다.
◇신뢰 무너진 정부 대책 = 정부는 5월 국내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자 국가전염병재난단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조정하고 보건복지가족부 산하에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일선 보건소와 공항검역소를 중심으로 ‘예방’ 중심의 대응책을 펴면서 2개월여간 감염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신종플루 감염속도를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늦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기간 예산조율이 늦어져 항바이러스제와 백신구입, 일선 의료기관과 학교의 장비지원에 필요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이때 한발 먼저 백신을 확보하고 학교와 일선의료기관에 항바이러스 마스크 및 체온계를 지급하고 인력을 추가로 보강했더라면 작금의 혼란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복지부 관계자도 “이번 신종플루 사태는 정부로서 처음 가는 길이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정부대응은 7월21일 지역사회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국가전염병재난단계를 ‘경계’로 올려 예방중심의 방역을 ‘치료’ 중심으로 전환하고 첫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더욱 흔들렸다.
환자 관리체계가 민간으로 넘어갔지만, 보건당국의 환자 지침은 일선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지침이 바뀌기도 했다. 병원들은 격리병동, 보호장구 등 기초적인 준비 없이 환자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스레 일부 의사들은 자기 병원의 감염가능성을 걱정하면서 환자들을 거점병원, 보건소로 돌리며 발을 뺐고 보건소와 거점병원은 밀려드는 진료환자에 업무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금은 준비부족인 상황을 정부가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사태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신종플루 대책 발표하는 전재희 장관(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국내에서 신종인플루엔자 세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28일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28일 서울 종로구 청사에서 신종 플루 백신 수입과 생산 등 신종 플루에 대한 범정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09.8.28
◇국가 비상의료체계 구축해야 = 이번 사태를 놓고 ‘우리나라가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준 실례’라는 지적이 많다.
전염병 대응과정에서 보건당국-공공의료-민간의료로 이어지는 삼각 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이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강진한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정부 따로 현실 따로 실행되고 있다”며 “병의원은 자기관리에 급급하고 정부는 현실성 없는 정책을 내놓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약한 공공보건의료 부문도 분명한 한계를 보인다.
2007년말 현재 공공의료기관의 수는 3천646곳으로 민간(5만2천753곳)의 10분의 1이하고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도 49만585개로 전체 병상의 11%에 불과, OECD의 최하위권 수준이다. 보건소별 진료 가능한 인력은 1-2명에 불과하고 방역업무는 대부분 한 명이 전담하는 현실이다.
학교는 감염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초중고 3분의 1이 양호교사가 없어 감염에 방치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다음 달부터 환자가 더욱 늘어나면 지금의 국가 비상의료시스템으로는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자칫 국가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단기간 공공의료시설의 기능을 신종플루 환자 진료에 전념토록 하고 시급히 학교 의료진을 보강해 학부모와 학생의 동요를 막을 필요가 있다.
또 1,2,3차 의료기관별로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구분해 진료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일선 의료기관과 의료진도 ‘국민 보건’ 차원에서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토록 해야 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종명 정책팀장은 “장기적으로는 최악의 전염병 사태와 전시상황까지 감안해 정부와 민간의료, 공공의료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번 신종플루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충고했다.
◇전쟁은 이제부터..총력태세 돌입 = 뒤늦었지만 정부는 신종플루 사망자 발생 이후 혼란스러웠던 모습에서 벗어나 전열을 정비하고 총력대응태세에 돌입했다. 다가올 10-11월에 대유행이 시작되면 800만명까지 감염돼 국민피해가 속출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지난 5월 1일 출범한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확대개편 재난관리법에 따른 재난관리본부에 버금가는 조직으로 운영키로 했고 민간 의료기관 등과 협의체도 구성, 거점병원·거점약국과의 채널을 만들었다.
백신은 보건·방역인력과 고위험군, 학생 및 군인 등 우선접종대상인 1천336만명을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접종할 수 있도록 녹십자와 다국적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으로부터 연내 1천만 도즈의 공급 약속을 받았다.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신종플루 세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27일 오후 보건복지가족부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감염경로, 사망경위 파악과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신종플루 확산이 본격화되고 이로 인한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합동대책본부를 구성,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펼치기로 했다. 2009.8.27 uwg806@yna.co.kr (끝
녹십자는 항원보강제를 활용하면 연내 계획했던 물량을 2.5배가 넘는 1천900만개까지 백신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접종대상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항바이러스제는 이미 확보한 531만명분(총인구 11%) 외에 연내 500만명분을 추가로 확보하고 내년부터 이 정도 물량을 상시 국내에 비축, 앞으로 다가올 2차, 3차 유행에도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이외에도 지자체 대규모 행사 자제, 가금류·가축의 인플루엔자 감염예방 관리 및 감시체계 강화, 기업 대응지침 마련, 학교별 발열 감시체계 가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신종플루가 대유행기에 접어들어 피해가 커질 기미가 보이면 신속히 국가전염병재난단계를 최고인 ‘심각’으로 올려 재난관리본부를 설치하고 대응수위를 한단계 높일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학교 조기방학, 외출 자제, 집단감염 시설 폐쇄, 다중이용시설 이용 금지, 병원 내 입원환자 조기 퇴원 및 병상 강제동원 등 강도 높은 대책이 추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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