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미국 노동안전보건에 밝은 미래 올까?
- 오바마, 산업안전보건청장에 반기업 역학전문가 ‘데이빗 마이클스’ 지명
김신범 교육실장, 2009-08-30 오후 2:47:34
오바마 행정부는 연방정부의 안전보건담당 부서인 산업안전보건청(OSHA)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듯하다.
2009년 7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은 데이빗 마이클스를 산업안전보건청 청장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데이빗 마이클스는 역학을 전공한 학자이며, ‘청부과학(Doubt Is Their Product)’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하여 기업들이 어떻게 유해한 물질의 사실을 왜곡하고 로비를 해왔는지 자세히 폭로한 바 있다.
데이빗 마이클스의 지명은 아직 의회 승인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의 안전보건 책임자인 페그 세미나리오는 전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산업안전보건청장은 매우 진보적인 인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있었다. 지난 2009년 4월 오바마 행정부는 산업안전보건청장 자리가 비어있었을 때, 조단 바랍을 권한대행으로 임명한 바 있었다. 조단 바랍은 노동조합과 적극 연대를 해온 사람으로, 지난 25년간의 산업안전보건청 행보와 정책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제 조단 바랍은 산업안전보건청의 2인자가 되겠지만, 산업안전보건청은 기업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주도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7월 광산안전보건청(MSHA) 수장으로 전직 광부이자 노동조합 활동가로 오랜 경력을 가진 조셉 에이 메인을 임명한 바 있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은 1971년에 세워졌다. 주된 역할은 사업장 감독이며, 안전보건위험 기준을 제정할 권한을 가졌다. 산업안전보건청은 로날드 레이건 행정부시절부터 기업주들의 로비와 정치적 압력으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많은 위험요인에 새로운 기준을 제정하는 역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비판받았다. 그리고 기업주를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관리로 맡겨버림으로써 감독기능도 약화되었다고 비판받아왔다.
미국 언론들은 새 청장 임명이 산업안전보건청 정책에 급진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예측한다. 산업안전보건청이 기업주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뢰성 있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날 것에 기대가 커지고 있다.
청부과학이란 어떤 책인가?
청부과학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있다. 노동자 건강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바람꽃’의 블로그에 청부과학의 소개글이 있기에 올려놓는다.
지금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 하나. ‘흡연은 건강에 나쁘다’. 흡연은 폐암을 비롯한 각종 암을 유발하고, 뇌심혈관질환 발생 확률을 엄청나게 높인다. 지금은 명백해 보이는 이 사실이 지난 수십년 동안 법정 다툼을 비롯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것이 여러 과학적 연구들에서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었지요. 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들은 담배회사들이었고, 이 담배회사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준 이들은 담배회사들로부터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이었습니다.
화학물질들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X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 X라는 물질이 사람에게서 암을 일으키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X라는 물질을 사람에게 노출시켜서 암이 생기는지 안 생기는지 보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마루타 실험이 가능할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신 하는 방법이 쥐 등의 동물을 이용한 노출 실험입니다. 그런데 이 동물실험은 맹점이 존재합니다. 사람과 동물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동물에서 암이 발생한다고 혹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사람에게서 암이 발생한다는 혹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쥐 같은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대개 10년 이상 걸리는 암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고, 이런 이유 때문에 쥐에게는 보통 고농도의 물질에 노출시키는데, 그렇다면 이 실험결과를 가지고 얼마만큼이 인간에게 안전한 농도인지 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동물실험과 함께 중요한 연구가 바로 역학 연구입니다. 역학이라고 하면 일반인 중에서는 무슨 점집 같은 것을 상상할 수도 있겠으나, 역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위의 물질 X를 다시 생각해보면, 물질 X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암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조사해서 일반 인구들과 비교하여 암이 일반인구보다 더 많이 생기는지 아닌지 조사하는 학문이 역학입니다. 그런데 이 역학 연구에도 맹점이 존재합니다. 역학 연구결과는 통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통계를 공부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결과치가 암 발생 위험이 몇 배라고 하는 딱 하나의 수치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뢰구간과 같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신뢰구간이라는 것이 조사 대상수가 충분히 많지 않으면 매우 넓어져 확실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연구 결과 X에 의한 암발생위험이 3배라고 하더라도, 신뢰구간이 0.8-8배라고 하면,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결과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조사 대상수를 늘리면 되겠지만 수 천명 혹은 수 만명의 조사 대상자를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확보하더라도 제한된 연구비로 조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한 역학 연구의 경우 조사방법과 분석방법 등에 따라 충분히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경우도 의미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앞에 이야기한 것들을 포함해서 화학물질 X가 암을 일으키는지를 밝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불확실성을 이용해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업체들이 의심(Doubt)을 만들어내, 많은 사람들을 위험한 상태에 빠뜨렸다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되는 물질들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연구들이 쏟아져나옴에도, 이 불확실성의 틈새를 이용해 그렇지 않다는 주장들을 의도적으로 생산해내, 지금 당장 노출을 중단시키면 막을 수 있는 건강위험들을 지속시키면서 업계의 이익을 방어하는 방법이 조직적으로 사용되어온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흡연에 대해서 담배회사들이 사용했던 방식들을 석면, 납, 벤젠, 크롬, 디아세틸, 베릴륨, 의약품 등에 대해서 어떻게 관련업계들이 반복해서 사용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불확실성의 문제는 우리사회에도 존재해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타이어에서 돌연사가 증가한 사건과 반도체공정에서 백혈병이 보고된 사건 등을 명쾌하게 결론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의 이면에는 바로 이 불확실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분명 심증은 가지만 과학적 증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업체측에서는 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당사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철저한 원인규명과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조사를 담당한 정부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애매한 stance를 취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문제들도 지속적인 조사를 거치면 점점 확실한 사실들이 떠오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다만 그동안 업체의 협조는 잘 안 이루어질 것이고, 확실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동안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현재 우리는 유해물질과 관련된 건강문제에 있어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물질들이 무수하게 만들어지지만 건강문제가 잘 평가된 후에 사용되는 물질들은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다른 많은 물질들은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고, 규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물질들을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에 문제가 드러나면서, 천천히 조사가 시작되고, 규제가 이루어지고… 대개는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건강이 우선시되는 사회라면 이러한 불확실성의 문제를 관련업계의 이익이 아닌 국민건강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진지한 논의와 준비를 해야하겠지요. 그것이 참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요.
[출처] 청부과학 – Doubt is Their Product| 바람꽃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chizop2?Redirect=Log&logNo=50044645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