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플루① 신종플루의 원인

“신종플루, 왜 ‘돼지독감’이라고 부르지 못하나”
[바이러스의 습격, 신종플루①] 신종플루의 원인
기사입력 2009-09-15 오전 10:25:04

     14일 국내에서 일곱 번째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가 잇따르고, 언론을 통해서 사망자 카운트가 시작되면서 대중의 공포는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이번 신종플루의 치명률은 계절성 독감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신종플루의 높은 감염성을 염두에 두고 큰 우려를 표명한다. 잇따른 국내 사망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고위험군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병원성의 변종이 생길 경우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항바이러스제 비축, 백신의 준비 등 의료 대응 체계가 매우 부족해 해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에 대한 ‘강제 실시권’ 행사가 정부,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으나, 파장은 미미하다. 또 백신을 계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설 확보 등에도 정부가 준비 부족으로 백신 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프레시안>은 연구 공동체 ‘건강과대안’과 함께 5회에 걸쳐 신종플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을 살펴본다. 먼저 박상표 건강과대안 <이슈페이퍼> 발행인이 신종플루의 원인과 대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를 최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짚는다. <편집자>

신종플루의 원인은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밝혀져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기원은 아직도 미궁 속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은 멕시코와 미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독감의 원인체가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사실이다.

돼지의 호흡기 상피세포에는 사람, 돼지,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모두 달라붙을 수 있는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짬뽕사발(mixing vessel)이라고 부르고 있다. 살아있는 돼지를 직접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돼지고기만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돼지독감에 전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돼지독감에 걸린 돼지는 3개월간 무증상 상태에서 전파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영국의 국립의학연구소(NIMR) 등은 이번에 유행하고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DNA를 분석한 결과, 8개의 유전자 조각 가운데 6개는 북미 지역에서 발생했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이고, 나머지 2개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유래한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고 밝혔다. 북미 지역에서 유래한 6개의 유전자 조각은 1998년 이후 북미 지역에서 분리된 H1N2형과 H3N2형의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1998년에 분리된 Swine H3N2는 조류와 돼지와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3중 조합으로 확인되었다.

▲ 돼지에서 유래한 신종플루 바이러스는 과연 인류를 대재앙으로 몰고 갈 것인가? ⓒ로이터=뉴시스

10년 전부터 미국에서 돼지독감 환자 가끔씩 발생

1998년 당시 전문가들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바이러스가 언젠가는 다시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3중 조합 돼지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는 1998년 이후 종 간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에게 가끔씩 드물게 전염을 일으켰는데, 감염자들은 모두 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전염 사례가 처음 보고된 것은 2005년이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도축장에서 17세 청소년이 돼지에게 노출된 후 돼지독감에 전염되었다. 그는 두통, 설사, 허리 통증, 기침 등의 증상을 보였으나 열은 높지 않았다. 이후 2005년~2009년 동안 3중 조합 돼지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된 사람은 11건이었으며, 이 환자들은 모두 돼지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역학적 관점에서 이번 ‘신종플루’는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전염이 이루어졌으며, 그 진원지는 미국의 돼지농장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최근까지 양돈업계에서는 돼지들에서 병원성이 약하거나 불현성 감염이 일어나는 등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돼지독감 바이러스의 감시 및 방역 활동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 사이 돼지 독감 바이러스는 공장형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농장주, 수의사, 돼지 도축장 노동자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인체에 전염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으며, 그 가족들과 친지들을 통해 지역사회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역학조사 등 과학적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어떻게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인간 대 인간 전염능력을 획득하여 지역사회에 전염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스미스필드, 타이슨푸드, 카길, 스위프트 등 초국적 거대 축산기업의 돼지농장에 대한 역학조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돼지독감을 돼지독감이라 부르지 못하는 까닭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수역사무국(OIE), 국제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들과 축산업계 및 각국 정부들은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2009년 돼지 독감 대유행의 원인으로서 돼지를 과소평가하거나 배제하고 있다.

미 CDC는 지난 4월 15일 돼지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H1N1) 환자를 공식 확인했다. CDC는 바이러스 명칭을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라고 불렀으며, 언론들은 이를 줄여서 돼지독감(Swine Flu)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미국 축산업계와 농무부 등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명칭의 변경을 요구했다.

축산업계와 미 농무부 등의 이해를 대변한 국제수역사무국(OIE)도 4월 28일 “A형(고병원성) H1N1 혈청형 돼지독감의 인간발병에 대해 식품을 통한 바이러스의 전염 사례가 없으며, 동물로부터 바이러스의 검출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둘 때 돼지 인플루엔자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OIE의 이러한 발 빠른 대응은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도 미군 병사들의 발병원인이 돼지 농장으로 지목되자 양돈업자들이 OIE 성명서 내용과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 드러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Swine Influenza(SI)라 명명했고, 농식품부는 Mexico Flu(MI)라고 명칭을 바꾸기도 했다.

결국 미국 정부, OIE, 세계식량기구(FAO) 등으로부터 압력을 받은 WHO는 4월 30일 Swine Influenza라는 명칭을 Influenza A(H1N1)로 바꿨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신종 플루’라고 명칭을 바꾸고 혼선을 빚었던 정부 부처 간 이견을 해소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WHO가 정치적 결정을 통해 명칭을 바꾼 바로 그 즈음에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돼지독감(Swine influenza)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조롱하며 유명한 과학 잡지 <사이언스>의 블로그에 “돼지독감의 명명법이 돼지독감 그 자체보다도 더 빨리 진화했다”고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과연 인플루엔자 대재앙의 우려가 현실화 될까?

현재까지 미국, 캐나다, 덴마크, 홍콩, 일본 등에서 타미플루 내성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지난 8월 21일에는 칠레에서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종 간 장벽을 뛰어넘어 조류에게 전염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칠레의 보건당국은 산티아고 북서쪽 14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항구도시 발파라이소(Valparaiso) 외곽에 있는 2곳의 칠면조 농장에서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칠면조를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정 진단하였다. 돼지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칠면조들은 가벼운 임상 증상만을 보였으며, 아직까지는 야생 조류에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다거나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는 징후는 없다.

미국 CDC의 항바이러스제 내성 검사 결과를 보더라도 아직까지 타미플루 내성 바이러스가 널리 퍼졌다고 보기 힘들다. 미 CDC는 2008년 10월부터 최근까지 계절성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 1148건, 안풀루엔자 A(H3N2) 바이러스 253건, 인플루엔자 B 바이러스 651건, 2009 돼지독감 A(H1N1) 바이러스 1만22건에 대해 타미플루, 릴렌자 내성검사를 실시했다.

계절성 독감 A(H1N1) 바이러스는 검사 샘플의 99.6%에서 타미플루 내성을 보였으며, 2009 돼지독감 A(H1N1) 바이러스의 타미플루 내성률은 0.6%로 나타났다. 아마도 아직까지는 계절성 독감에 비해 타미플루 처방과 투약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내성률이 낮게 나왔을 것이다. 반면 릴렌자는 아직까지 내성 바이러스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타미플루에 비해 처방과 투약이 8분의 1~9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2009년 돼지독감은 20세기에 세 차례 발생한 인플루엔자 대유행보다 치명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18~19년 인플루엔자 대유행 당시 치명률은 2~3%로 아주 높았으며, 건강한 젊은 성인층의 희생자가 많았다.

계절성 독감 바이러스의 경우는 2009 돼지독감 바이러스보다 치명률은 낮거나 비슷하다. 그러나 계절성 독감으로 인해 매년 300만~500만 명이 고열, 인후통, 폐렴 등의 심한 임상증상으로 진행되는 등 이환율이 아주 높고,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25만~50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

미 CDC 및 하버드-메사추세츠대 공동 연구팀이 지난 7월 <사이언스>에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1N1의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이 인간의 호흡기 상피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능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페릿과 생쥐를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 돼지독감 바이러스는 폐와 위에 감염이 일어났다.

반면 계절성 독감 바이러스는 폐에만 감염이 일어났다. 따라서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인체 전염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전파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연구팀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빠른데다 이번 바이러스는 위장 내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특성이 있어 쉽게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메릴랜드대 연구팀도 미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가능성에 대한 동물실험을 실시했다. 페릿을 실험동물로 이용하여 돼지독감 바이러스와 계절성 독감 바이러스를 동시에 감염시킨 실험을 실시한 결과, 두 바이러스변종의 조합이 서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실험 결과도 이번 겨울에 돌연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대재앙이 현실화된 공포의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9 돼지독감 대유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결과를 명확히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사전 예방의 원칙에 따라서 돌연변이에 의한 2차 대유행 가능성에 대비하여 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상표 수의사·건강과대안 <이슈페이퍼>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