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파업노동자 42%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41%가 고도 우울증…폭격장 주변 매향리 주민보다 6~7배 높아
77일의 파업을 벌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구체적인 조사로 확인됐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전국금속노동조합은 14일 ’2차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쌍용차 노동자 가운데 4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고 71%가 심리상담이 필요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우울증 결과는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6월 실시했던 1차 조사보다 무려 16%포인트나 높은 것이었고, 그 가운데 당장 치료가 필요한 고도 우울증상은 미군 폭격장이 근처에 있던 매향리 주민보다 6배나 많았다.
우울증 비율, 사격장 주민·해직 공무원보다 높아
조사 결과, 파업 노동자 가운데 42.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는 성적 희롱이나 폭력이 많은 서비스 노동자(6.7%)나 인명 사고를 자주 경험하는 열차 기관사(6.5%)보다 6~7배 높은 수치였다.
▲조사 결과, 파업 참여 노동자 가운데 42.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전쟁이나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비슷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느껴 고통을 받는 질환이다. 이들 단체는 “이 질환 환자는 환청 등의 지각 이상이나 공황발작을 경험할 수도 있고 공격적 성향,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약물 남용 등의 연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도 심각해졌다. 정상 수준의 우울증상을 보인 사람은 전체 조사 대상의 7%로 지난 1차 조사보다 7%포인트 감소했다. 그러나 중등도 우울증상과 고도 우울증상을 보인 비율은 파업이 끝난 뒤 더 많아졌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30.1%가 중등도 우울증상을, 41.0%가 고도 우울증상을 겪고 있어, 심리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71.1%에 달했다.
파업 중이었던 1차 조사의 54.9%보다 늘어난 것이었고, 사격장 주민(26.5%), 노조 상근자(23.7%), 해직 공무원(28.5%)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파업 기간 빚 늘어난 사람일수록, 회사의 회유에 시달린 사람일수록 높아”
특히 파업으로 인해 빚이 늘어난 사람일수록,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사람일수록, 노사합의가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는 사람일수록 정신건강이 악화됐음이 확인됐다.
파업 기간 중 빚이 늘어난 사람 가운데는 무려 43.8%가 고도 우울증을, 30.8%가 중등도 우울증을 보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56.1%가 겪고 있었다. 반면, 파업 기간 채무증가가 없었던 사람 중에 고도 우울증은 25%, 중증도 우울증은 27.5%였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35.3%로 채무 증가자 집단에 비해 다소 낮았다.
파업 기간 중 회사의 회유와 협박을 경험한 적이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의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율은 각각 45%와 60%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노사합의 이행 여부에 대한 강한 불안감을 가진 집단과 파업 후 동료나 이웃과의 관계가 매우 나빠진 집단이 유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노사합의 이행에 대해 ‘너무 불안하다’고 대답한 사람 가운데 무려 63.2%가 이 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약간 불안하다’는 응답층에서는 21.7%, ‘별로 불안하지 않다’고 응답한 집단에서는 36.4%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동료와의 관계가 ‘매우 악화된’ 집단에서는 69.1%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83.1%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겪고 있었다. 이웃과의 관계가 ‘매우 악화된’ 집단에서는 각각 69.6%, 83.3%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응답자의 97.1%는 정리해고 대상자였고, 응답자 전원이 파업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77일의 전 기간을 모두 참여한 노동자는 85.7%였다. 파업 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2%에 그쳤다.
시민단체 힘 모아 지원단 구성…심리상담 및 정신과 치료 지원
[동료와의 관계가 '매우 악화된' 집단에서는 69.1%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83.1%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겪고 있었다. 이웃과의 관계가 '매우 악화된' 집단에서는 각각 69.6%, 83.3%로 나타났다.]
이들 단체는 “우울증은 파업기간 중 조사한 결과보다 더욱 나빠진 것으로 시급히 의학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들을 위한 회사의 성실하고 진실된 접근과 배려가 필요하며 노사의 합의사항을 준수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쌍용차 파업 노동자를 위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노동건강연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권운동사랑방,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 등이 지원단을 구성해 △전문적인 심리상담 및 정신과 진료, △ 웃음 치료 및 마술 프로그램, △집단 상담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여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