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제주 영리병원 ‘조건부 허용’
‘신설’만 가능…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유지해야
시민단체 “전국 확산땐 의료체계 통째로 흔들”
김소연 기자
주식회사 형태로 영리 목적의 병원을 만들어 운영하는 내국인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주에 들어서게 된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들은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곧바로 경제자유구역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요청한 도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에 대해 조건부 수용하기로 하고 1일 이런 내용의 검토의견을 국무총리실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에 냈다.
복지부는 “제주도가 진정한 국제자유도시로 발돋움하고 동북아 관광허브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의료분야에 개방된 투자가 요구된다”며 “해외환자 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수용 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유지, 기존 비영리법인의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전환 금지와 함께, 법인 허가제 및 복지부 장관의 사전승인 절차, 병원급 이상에만 설립 허용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의료비 상승 등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제주도 차원에서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제주도는 현재 서귀포시 147만7000㎡에 헬스케어타운을 세워 휴양형 의료관광 시설을 만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관련법을 만들고 의료법인 설립 절차 등이 마무리되는 3~4년 뒤에 첫 영리 의료법인이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보건의료단체들은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줄기차게 영리의료법인 허용을 요구하고 있고,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 등 특별구역에서도 설립을 요청하는 움직임이 있어, 정부의 이번 조처가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뒤흔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상류층만 질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게 돼 이미 심해지고 있는 의료 양극화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며 “정부는 제주도에서만 허용한다고 말하지만, 일단 한 곳이라도 설립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경제자유구역을 비롯해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강연대 등 50여개 시민단체들이 모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추진위원회’도 “영리병원 확산으로 건강보험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의료비가 폭등하고 의료이용 양극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