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치료제 예산 지자체에 ‘떠넘기기’

치료제 예산 지자체에 ‘떠넘기기’
박용근·박태우·최승현기자 iloveic@kyunghyang.com

ㆍ정부 “25% 부담 않을땐 절반만 배정” 공문
ㆍ“지방 재정 취약한데 죽으란 말이냐” 반발

정부가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 확보 예산 중 25%를 지자체에 부담시키자 지자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스크 쓴 교실 신종플루가 학교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7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받고 있다. <남호진기자>

특히 정부가 부담을 하지 않는 지자체엔 배정된 물량의 절반만 줄 것이라는 공문까지 보내자 지자체들은 “부자 감세와 교부세 감소로 재정상황이 열악한데 국가사무까지 맡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27일 각 광역지자체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달 초 “20% 수준의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 비축을 위해 500만명분(2차분) 추가에 소요되는 1250억원 중 25%(312억원)를 지방비에서 충당해 구입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16개 각 자치단체에 보냈다.

복지부는 또 “ ‘부담 불가’ 의견을 제출한 시·도의 경우 치료제의 배분 비율을 100%에서 50%로 조정해 추가 소요 의사가 있는 다른 시·도에 배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정부는 1차분 250만명분의 치료제는 국가사무인 점을 들어 국비로 충당했다.

이에 대해 지자체들은 신종플루의 확산과 주민 건강을 고려해 예산을 배정할 계획이지만, 갑작스러운 예산 편성 지침에 따른 불만이 크다. 특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항바이러스제 배정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돈 없는 지자체는 신종플루가 창궐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부담금 10억7300만원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강원도 관계자는 “극도로 지방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추가재원을 마련하라는 지시는 사실상 다른 사업을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의 경우 올해 안에 13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도와 시·군이 3 대 7 비율로 나눌 계획이다. 결국 광역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초지자체의 살림까지도 축내야 할 형편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감세 정책과 교부세 감소로 지방채를 발행할 정도로 지방 재정상황이 악화돼 있는 데다 연말이 다 된 시점이어서 13억원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는 신종플루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하지만 해결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경기도(65억5800만원)와 대구시(15억5300만원)는 예비비를 긴급 투입했다. 그러나 경기도 관계자는 “정부가 ‘돈 없으면 다른 지자체로 물량을 넘기겠다’고 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예비비에서 충당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구시의 한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번지는 신종플루의 치료제 구입비 등은 정부에서 일괄 부담하는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지자체들은 재원운용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박용근·박태우·최승현기자 iloveic@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