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료민영화가 ‘낭비’라는 것 깨달은 미국…..한국은?

의료민영화가 ‘낭비’라는 것 깨달은 미국… 한국은?
톰슨 로이터 보고서가 밝힌 미 의료시스템의 낭비요소

09.11.09 10:11 ㅣ최종 업데이트 09.11.09 10:11  새사연 (sesayon)

의료민영화, 의료개혁, 톰슨로이터 보고서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의료보험개혁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인터넷판  오바마

미 오바마 행정부가 핵심 정책 과제로 내세워 온 건강보험 개혁법안이 7일(현지시각) 하원을 가까스로 통과했다는 소식이다. 이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의료 서비스의 질은 가장 낮은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중요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물론 아직 상원이라는 넘기 힘든 또 하나의 벽이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 개혁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새사연 보고서 미국의 의료 현실과 오바마 개혁이 주는 시사점와 오바마의 의료개혁과 한국의료의 특수성을 참고하기 바란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처럼 의료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 정치 생명마저 걸고 고군분투하는 사이 한국 정부와 여당은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어렵게 쌓아온 공공영역을 무너뜨리는 데 목을 매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의료민영화(산업화) 관련 법안(의료채권법, 의료법 개정안,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 내국인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허용 법안 등이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민영화의 모델로 거론되는 미국에서 의료시스템 부실로 연간 최대 8500억 달러(약 1000조 원)가 낭비되고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지난 10월 26일 세계적 정보기업인 톰슨로이터가 발표한 ‘건강보험 시스템에 관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불필요한 과잉검사와 정보 공유 체계의 미비 등 고질적인 낭비 요인으로 연간 5000~8500억 달러가 낭비되고 있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대부분 영리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는 영리 모델이 공공 모델에 비해 더 효율적이라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불합리한 의료 외적 지출과 낭비가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의 결론은 간단히 말해 미국 의료시스템이 너무 비싸며, 너무 낭비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 국민과 정부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기업주들에게도 버거운 짐이 되고 있다. 가령, 보고서에 따르면 GM의 경우 2004년에 의료비로 52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철강 구매를 위해 지불한 돈보다 더 많은 액수다.

연간 1천조 원 낭비되는 미국의 영리 의료시스템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보고서가 꼽은 대표적 낭비 요인은 낭비적 관리시스템, 의료공급자의 증명되지 않은 고비용 시술, 합리적 설계와 조정의 실패, 의료의 오남용, 예방 의료의 미비, 의료 사기와 부당 청구 등 6가지다.

첫째, 낭비적 관리시스템으로 연간 1000~1500억 달러가 낭비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단일한 국민 건강보험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해 다수의 영리-비영리 보험기관과 건강유지기구 등을 통해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영리보험회사 등은 환자 정보를 영업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산화 비율이 매우 낮다.

그런 이유로 환자의 기본 정보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못해 병원을 옮길 때마다 중복 검사를 받아야 하며 서류작업 등에도 많은 예산이 낭비된다. 이렇게 서류작업에 낭비되는 예산은 전체 병원 예산의 6퍼센트에 달해 조건이 비슷한 캐나다(비영리 의료시스템)의 두 배에 달하는 행정 관리비를 지출하고 있다.

병원 경영자(CEO)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보상액을 관리비 증가의 한 원인으로 꼽는 보고서도 있다. 어떻든 공적 관리에 비해 영리적 관리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잘못된 신화에 불과하며 오히려 영리 방식이 행정 및 관리비용 측면에서 더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의료 사고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병원 측의 과도한 사전검사와 항생제의 과다 투여 등 의료공급자의 부당한 고비용 진료 행위로 연간 2000~3000억 달러가 낭비되고 있다.

이는 미국 의료가 예방보다는 치료 중심이며 과잉 투약 및 과잉 검사가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대된 것도 과도한 시술과 투약이 만연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잇다.

셋째, 의료공급자가 의료에 대한 합리적 조정을 하지 않아 과잉 검사나 잘못된 투약, 입원 등의 서비스에 대한 비용으로 연간 250~500억 달러가 낭비되고 있다.

넷째, 검증되지 않는 고가의 치료로 2500~3250억 달러가 낭비되고 있다. 고가의 오리지널 약을 처방하거나 불필요한 검사나 수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섯째, 당뇨나 고혈압, 또 임산부와 관련된 예방적 접근이 가능한 질병에 대해 적절한 예방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낭비되는 비용도 250~500억 달러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기관들의 부당 과잉 청구나 잘못된 진료 등으로 낭비되는 비용이 1250~1750억 달러에 이른다.

낭비되는 전체 비용 5000~8500억 달러에서 각각의 경우가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검증되지 않은 서비스 제공이 40퍼센트, 부당 청구 등 사기행위 19퍼센트, 관리 행정비 증가 17퍼센트, 의료공급자의 낭비적 행위 및 의료사고 12퍼센트, 예방의학의 부족 6퍼센트, 적절한 의료서비스의 조정 부족 6퍼센트 등이다.

낭비 줄이지 못하는 한 오바마의 개혁도 한계에 부딪힐 것

현재 미국의 의료 개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보험가입과 보장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낭비를 줄여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고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바마 행정부는 낭비 요소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 계획으로 우선 고비용-비효율의 신약 및 의료기기, 신기술 사용에 제동을 걸기 위해 신기술 및 의료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는 연구소를 세워 평가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또한 의료기관의 행정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헬스 아이티’(Health IT) 도입을 촉진해 ‘이-헬스 레코드 시스템’(E-Health Record System) 구축에 10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한다.

고가의 약 처방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연방정부가 직접 의약품 협상에 나서는 한편,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에서부터 값싼 복제약의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에 대한 의료비절감을 위해 공공보건 및 예방을 강화하고 감염성 질환에 대한 대응과 예방검사 및 진단을 의무화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런 의료비 절감에 대해 미국 내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의료비 증가를 부추긴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료비가 비싼 가장 큰 원인은 영리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구조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단지 의료의 질에 대한 평가나 전자시스템의 도입, 복제약 사용 독려 등으로 의료비 지출을 통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영리적 섹터가 활성화되어 있으며 통일적 관리체계와 공적 시스템의 역할이 극히 부족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 탓에 의료 제공과 소비, 관리에 이르는 영역에서 공적 규제나 관리가 개입될 여지가 극히 적어 의료비에 대한 관리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 개혁과 관련해서도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계층의 보장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의료비에 대한 강력한 통제기전이 없이는 보험 보장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미국 의료개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의 둑’이 무너지면서 형성된 민간 기업들의 거대한 카르텔

▲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감세정책의 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레이건에서 시작된 부유층 세금감면은 의료와 교육 등의 공공서비스를 마비시켰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산업체질을 악화시켜 미국을 장기적 침체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했다.
레이건

그렇다면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을까.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미국 병원의 영리정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체 병원 가운데 영리병원 비율은 1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공병원이 23퍼센트를 차지하며, 나머지 역시 카운티 병원(저소득층이나 비보험자를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 등 비영리병원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영리 모델로 분류하는 이유는 보험부분 때문이다.

1973년 닉슨 대통령은 급등하는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방안으로 건강유지기구법(the HMO Act)을 제도화하고 1976년에는 지원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그 뒤로 민간보험회사를 중심으로 한 ‘HMO(건강유지기구)’가 의료공급관리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기존 대표적인 비영리기구였던 ‘HMO’는 네트워크형의 영리기구 형태로 변화하였다.

여기에 민간 의료보험을 취급하던 대형 보험회사가 새롭게 뛰어들면서 보험부분이 관리의료를 중심으로 빠르게 영리화·상업화되고 결국 전체 의료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민간 영리보험회사가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레이건 정부 시절 복지부문을 대폭 축소한 정책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국가가 담당하던  보건의료 영역에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국가가 제공하는 보험인 메디케어, 메디케이드를 민간 영리기구가 대행하는 형태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민간 보험회사와 관리 기구에 대규모의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병원들은 다양한 형태의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미국의 영리적 의료시스템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구축된 것이다.

민간보험회사-건강관리기구를 통한 관리의료-병원-제약회사로 이어지는 강고한 카르텔 구조 속에서 의료에 대한 통제기전이 작동하기는 어렵다. 보고서에서도 언급하듯이 급증하는 관리비는 수천 개의 회사와 기구들이 얽혀있는 구조가 낳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국가의 직접 지원과 각종 의료보험의 확충을 통해 토대가 마련되었지만 국가재정의 한계와 80년대 이후 득세한 신자유주의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그 틈새를 민간 영리기업이 독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국가 및 사회의 통제가 거의 통하지 않는 거대한 독점기업 같은 카르텔이 만들어지고 만 것이다.

미국보다 취약한 한국 의료의 체질, 민영화의 미래는 더 암담

우리나라는 미국의 제도와 특징을 많이 모방해 왔다. 특히 미국의 힐-버튼법과 유사한 형태의 병원 지원 정책으로 민간의료기관 증설에 많은 국가재정을 투여해온 점이 그렇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1960년대에 이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도입하는 등 오랜시간 동안 촘촘하게 안전망을 구축해오는가 하면 의료수가 및 서비스에 대한 통제와 비영리병원의 공익적 운영 경험도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나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영리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아무런 규제 수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은 매우 우려스럽다. 현 의료민영화 정책의 배경에는 미국 의료시스템이 상업화, 영리화로 전환되던 시기의 논리나 흐름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는 현재 우리와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들과 비교해 GDP 대비 의료비 비중이 약 2퍼센트(약 20조 원) 정도 낮은데 정부는 이만큼의 의료비가 증가할 여지가 있으므로 민간 자본의 유입을 통해 이 부분을 채우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상당한 수준으로 영리화되어 있으며 앞서 살펴봤듯이 체질이 취약해 민간 영리자본을 끌어들이게 되면 이들이 현재의 미국보다 훨씬 더 막강한 주도력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11월 국회를 주목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이은경, 2009.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