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어떻게 막으라는 것인가
[미디어 바로미터]우석균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2009년 11월 11일 (수) 15:39:56 미디어오늘 ( media@mediatoday.co.kr)
신종플루 전염병 재난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신종플루는 심각한 국가재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심각한 국가재난이라면서 달라진 것이 없다. 국민에게 주어진 것은 “국민행동요령”뿐이다. “증상이 있으면 출근·등교를 하지 말고 진료를 받고, 환자는 자택에서 약을 복용하면서 1주일간 자가 격리”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 된 도리로 이 ‘행동요령’을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출근하지 말고 등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아프다고 맘 편히 병원에 가고, 더욱이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고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직장도 그리 많지 않다. 사무직이 아니면, 또 정규직이 아니면 이것도 어렵다.
당장 엄마 아빠들이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있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되는가’라고 묻는다. 왜 그들이라고 아이들을 더 쉬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부부 중 하나는 쉬어야 하는데 가능하지가 않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 해야 했던 일은 국민행동요령의 재확인이 아니라 이를 실제 지킬 수 있는 권리의 보장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행안부는 지난 9월 “신종플루 확산방지를 위한 공무원 복무관리 지침”을 발표하여 공무원들에게 “1) 신종플루 완치까지 ‘병가’ 처리 2) 신종플루 증상이 있으면 1주일간 ‘공가(公暇)’처리 3) 가족 중 감염자가 있으면 완치 때까지 ‘공가’ 처리”라는 방침을 밝혔다. 이 지침을 전체 직장인에게 확대했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를 전체 업종에 확대하라는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대한 노동부와 복지부의 대답은 ‘법적 검토를 해봤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부가 한 것은 아프면 쉬라고,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으면 돌보라고 말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를 모른 사람도 있나?
국가가 국민보고 하라고 하면서 말만 앞세우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병원을 가는 “국민행동요령”은 있지만 그 비용에 대해서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 국가재난이라면서 국민은 처음부터 알아서 개인이 대처해야만 했다. 신종플루 사태 초기부터 평상시의 보건의료체계는 없었고 사람들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신종플루가 의심되면 스스로 진단을 해야 했다. 또 찾아가야 했던 곳은 평소의 동네의원이 아니라 보건소였고 그 다음에는 거점병원이었다. 신종플루가 계절 독감 수준이라면서 동네의원은 환자를 기피하고 정부는 보건소를 가라, 또 거점병원을 찾아 가라 하니 국민의 “불안과 동요”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안은 정부가 부추겼다.
정부의 실질적 대책이 실종된 채 지난주 내내 거론된 것은 전국 휴교령이었다. 조선일보가 먼저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26일 월요일자 사설을 통해 “신종플루, 휴교(休校) 조처해서라도 확산 저지해야”라고 했다. 28일 의사협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휴교령을 촉구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수능 일정을 한 달쯤 연기하는 비상대책”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교과부는 실제로 휴교령을 내리기 위해 토론까지 끝냈다고 보도됐다. 그러나 휴교령을 내린다 한들 아이들을 집에 가둬 놓을 방법은 계엄령을 내리지 않는 한 전혀 없다.
명색이 전문가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관련 전문가들이나 하다 못해 감염내과 전문의들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자문을 구했으면 그런 비전문적 촉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재난이라면서 정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전문인단체라는 의사협회는 이 와중에 자신들의 이해에 치중하고 혼란만 초래한다. 보수언론은 정부의 실질적 대책을 촉구하는 대신 선정적인 보도만 일삼는다. 국민은 신종플루 국민행동요령을 지켜 국민 된 도리를 하고 싶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지키라는 것인가.
최초입력 : 2009-11-11 15:39:56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